조회 : 2,964 | 2014-03-05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거하시는가?

어린 아이의 기도처럼 들릴지 몰라도, 올 해 나에게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고, 내 안에 그 분이 사시게 하는 것이다. 과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에 거하신다고 믿어졌고, 이후 유럽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웅장한 대성당을 지었다. 하지만 성전 봉헌 당시 왕 솔로몬은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8:27)라고 말했다. 아무리 대성당이 호화 찬란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그 곳에 가두어 둘 수 없다.

가장 높은 하늘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 단순한 인간인 우리에게 하나님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대상이며, 세계 최고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시다. 새로운 항성 은하계들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그 무한한 숫자들을 결코 알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우주의 무한한 규모가 이미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 있다면, 그것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훨씬 더 불가해한 분이심이 틀림없다. 우리가 무한한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존재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종교적 귀속이나 신념에 기초한 수정 가능한 존재가 되며, 인간의 마음 속에 그려지는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교리나 신념의 대상이 아니시다.

예언자 엘리야는 나무로 신상들을 조각하고, 깎아낸 나머지 조각으로 땔감을 사용하는 자들을 조롱했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새겨진 형상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신앙 (monotheism, mono =유일한, those = 신)에 대한 성경적 명령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 분의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신7:6), 그들에게 완전한 유일신 신앙을 알려주셨다. 다른 소위 유일신적 종교들은 일부 다른 신들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최초의 유일신론자로 불리는 파라오 아케나톤은 태양을 숭배해 유일신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별들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셨기 때문이다 (왕하23:11).

이사야 57:15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따라서 통회함과 겸손한 자세가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게 하는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위해 경멸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처럼, 교만한 자들이 아닌 마음이 통회하는 자들을 택하셨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마21:42-44). 히브리어 원문 성경(시118:22)의 이 구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교만을 산산이 부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거하실 수 있게 됨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거만한 자들은 그들 위에 돌이 떨어져 먼지처럼 산산이 부서져 멸망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유한한 인간에게 다가 가셨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66:1-2).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14:23).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거하시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우리 마음에 그 분을 모시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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