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667 | 2014-03-05

폭풍 속에서도 아니 계시고 불 속에서도 아니 계시니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엘리야 만큼 담대하게 싸웠던 예언자는 많지 않다. 그는 일반 백성들의 죄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의 죄악까지도 공공연히 비난했다. 그리고 엘리야 만큼 많은 기적을 행한 예언자도 드물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되살렸으며, 가뭄과 우기의 시기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의 명령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그곳에서 바알 제사장들을 도륙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 병거로 그를 데려가셨으며, 후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자로 경외를 받았지만, 또한 미움도 받았다. 이렇게 강력했던 예언자가 갑자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압도 당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행자가 덤불 속에 웅크려, 자신은 열조들보다도 못하다고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간청한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동시에 그는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를 위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열거한다.

그 때 우레를 일으키는 폭풍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계시지 않았다. 이후 지진이 산을 흔든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계시지 않았다. 이제 화염이 타올랐지만, 슬프게도, 하나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이런 요소들은 엘리야가 사명을 수행했을 때 나타났던 현상들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미세한 작은 음성 가운데 나타나셨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직접 대면한 것처럼 떨었다. 그는 동굴을 나와 머리를 가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했다(왕상19장).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 여기까지 입니다!”라고 한탄할 때가 있지 않는가? 엘리야의 말을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바이샬 엣 나프쇼 라뭇인데 문자적으로 ‘그가 자기 영혼이 죽기를 간청하다’라는 뜻으로, 그의 영혼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말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셨던 것보다 더 열심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콜 드마마 다카, 즉 ‘깊은 정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궁지로 몰아가셨다. 이것은 모든 것이 고요와 정적 가운데 있을 때에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모든 힘을 소진하게 되었지만,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천사 (말라크 아도나이)는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그 앞에 떡과 물을 가져다 주면서 명령했다: “일어나서 먹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그 분을 위해 열심이었는가로 감동 받지 않으신다.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더욱 염려하신다. 사실, 이 시점부터 엘리야는 더 이상 죄인들의 멸망을 간청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그들이 구원받고 악의 길에서 해방되기를 간구했다.

지금의 우리 또한 호화롭고 격한 감정적인 예배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예배가 웅장하고 요란해야만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떠들썩한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다. 그 음성은 오직 정적 가운데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귀가 하나님의 음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궁지로 몰아가시고, 열심과 예배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비우게 하신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셰키나, 즉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며, 그 분께서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엘리야로부터 배운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고요한 세미한 음성 가운데서도 크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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