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004 | 2014-03-05

예수님의 부활은 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까?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 죽으심과 함께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시켜 주는 핵심적인 진리에 속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첫 열매’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예수님의 부활은 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까? 그리고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모든 신자들에게 일어날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되실까?

유대인들에게 ‘첫 열매’가 주는 의미는?

‘첫사랑’, ‘첫날밤’과 같이 어떤 단어가 우리들에게 주는 이미지와 의미들이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그들이 속한 문화와 풍습에 따라 다를 것이다. ‘첫 열매’라는 단어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첫 열매’가 한국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와 유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유대인들은 ‘첫 열매’를 말할 때,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바로(Pharaoh)에게 결정타를 가했던 ‘장자 재앙’을 떠올린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고, 애굽의 장자를 쳐서 하나님의 장자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이 출애굽이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4:22,23)

첫 열매를 히브리어로 ‘비쿠르’라 하고, 장자 재앙을 ‘마카트 브코로트’라고 하는데, ‘비쿠르’와 ‘브코로트’는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첫’ 아들(장자)과 ‘첫’ 열매는 모두 ‘처음 것’을 의미하며, ‘첫’에 해당하는 단어가 ‘비쿠르’이다.

애굽의 바로에게 결정타가 된 장자 재앙을 통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 열매’는 자유와 해방을 가져단 가슴 벅찬 단어가 아니겠는가?

첫 열매와 초실절

유대력으로 첫째 달인 니산 월 15일부터 21일까지 1주일 동안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인 무교병을 먹는다. 무교병을 히브리어로 ‘마짜’라고 하는데, 마짜를 먹는 1주일의 기간을 ‘무교절’이라고 부른다.

1주일 간의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 바로 ‘초실절’이다. 그러므로 초실절은 늘 일요일이었다. 초실절의 명칭은 바로 이 때 첫 열매를 성전에 바쳤기 때문에 부쳐진 것이다.

안식일이 지나고 동이 트면 사람들은 유월절(니산 월 14일)에 묶어 두었던 보리단을 자르러 보리밭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보리단을 낫으로 베고, 첫 열매로 거둔 이 보리단을 성전 뜰로 가지고 갔다. 제사장은 이 보리단을 번제단 북동쪽에서 지성소가 있는 서쪽을 향해 흔들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23:10,11)

이후 보리단은 갈아서 곱게 체질을 해서 소제(meal offering)로 바쳤다. 한 줌의 보리가루를 번제단의 불에 던져 태우고 한 마리의 수양을 번제로 바쳤다. 남은 보리가루는 제사장이 먹었다. 이것이 성서시대 초실절에 성전에서 드려지던 제사였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레2:14,15)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레23:12,13)

이렇게 첫 열매 제사가 성전에서 드려진 후에 예루살렘 시장에서는 곡식 판매가 시작되었고 추수한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초실절에 부활하신 예수님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1,2)

유월절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었다. 이 때 ‘마리아’로 불리는 무리 일행이 슬픔에 겨워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이 날은 다름 아닌 ‘초실절’이었다. 초실절 아침 동이 트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첫 열매로 거둘 보리단을 베러 보리밭으로 향하고 있을 그 때에 마리아 일행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 문헌인 미쉬나에 보면, 초실절에 성전에 바치는 보리는 갈릴리 북쪽에 있는 게네사렛 평야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갈릴리 지역은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검은색의 현무암이 주류를 이룬다. 이로 인해 갈릴리 북쪽의 게네사렛 평야의 토양은 현무암이 풍화된 검은 색의 흙으로 유명하다. 검은 색의 흙은 태양 빛을 오랫동안 흡수하며, 다른 지역에 비해 게네사렛 평야에서 가장 먼저 보리 수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해발 800m의 산지 지역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이후로 1-2달이 지나서 보리 수확이 이루어졌다. 게네사렛 평야의 처음 익은 보리단의 첫 열매를 성전에 바치며 초실절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이후에 전 이스라엘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거두어 들일 추수를 기대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처럼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사상이다. 밭의 첫 수확, 과실의 첫 과일, 양 무리의 첫 양을 드리는 것은 ‘일부’를 드림으로 ‘전체’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성경의 방식이요 유대인의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가 유대인 바울이 저술한 로마서에도 드러난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11:16)

성전에 첫 열매를 바치며 초실절 행사를 하던 그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에게 ‘첫 열매’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게네사렛 평야의 첫 열매 보리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보리 수확이 이루어지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장차 있을 완전한 추수, 즉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보증이요 예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 바쳐진 첫 열매 보리는 게네사렛 평야에서 수확한 보리를 드렸다고 이미 언급했다. 게네사렛 평야는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를 잇는 삼각형의 지역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가장 왕성하게 복음사역을 하신 활동무대였다. 게네사렛 평야의 보리를 성전에 첫 열매로 바쳤듯이, 그곳에서 가장 왕성한 사역을 하신 예수님께서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사건이 과연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이것은 인류 구속을 향한 파노라마 속에 이미 창세 전부터 정교하게 암호화된 경륜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예수님의 가장 왕성한 사역으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한 이 지역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이 저주하신 3개의 도시에 이 도시들이 모두 속하게 된 것이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마11:21-23)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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