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173 | 2014-03-05

예수 시대의 정치와 종교 -제 3편 (총 3편)

유대인 권력자들은 로마에 유화하는 것과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남아 있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예수 시대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 다양한 유대인 학파들이 있었다. 각 학파들에는 신봉자들이 따랐으며, 이들은 힐렐, 샤마이, 가말리엘 같은 위대한 랍비들에게 헌신했다.

이들 모두는 로마의 권력에 복종해야 했다.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통치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되는 것은 무엇이든 잔인하게 진압하는 로마의 보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다른 왕이 없다”며 로마를 달래려 했던 것이다. 이 언급은 전략적이고 외교적인 문제였다. 대제사장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전 민족이 몰살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았다 (요11:50).

이스라엘에 종교적, 정치적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요소는 로마 점령자들의 이교적인 우상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 전체에 조각과 우상들을 세웠다. 예루살렘에는 제우스와 아프로디테; 사마리아에는 디오니시오스와 아스타르테; 갈릴리에는 아르테미스와 플루톤; 그리고 베들레헴에는 아도니스가 세워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관습과 의식들은 이방인들의 제식과 헬레니즘만큼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목격하셨지만, 우상 숭배 이교도에 반하는 설교를 하시지 않으셨다; 그 분은 오직 내부로부터의 변화만이 이교 사상에서 유대인들을 자유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똑같은 이교도의 영향이 오늘날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예수 시대에 로마 제국은 영국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시아에서 이집트까지 그 세력을 뻗쳤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 중 겨우 0.2%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강 로마 제국은 아주 작은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69년 동안 전투를 해야만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방관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권력을 잡았던 유력한 인물이었다. 당시 로마의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를 무자비한 총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모든 전임자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수성을 존중해주었지만, 그는 예루살렘에 로마 황제의 상을 세워 전국적인 봉기를 유발 시켰다. 봉기들은 무자비하게 제압되었고, 빌라도는 7,000여명의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빌라도의 지나친 잔인함 때문에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그를 (오늘날 스위스인) 헬베티아로 추방했고, 결국 빌라도는 거기서 자신의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는 루체른 호수 근처 산에 매장되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산이 그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이다.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해 현실적이고 솔직한 방식으로 설교 하셨다. 그래서 세리와 아이들까지도 그 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교회는 그 분의 가르침을 복잡하고 난해한 신학으로 변형시켰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라고 단순하게 기도하셨다.


Picture - 돌에 새겨지다: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이 후판에는 ‘유대 지역의 본디오 빌라도’ (Etched in stone)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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