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266 | 2014-03-05

시들은 무화과 나무 (마21:19)

무화과 나무에 대한 예수의 질책은 대부분의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잘못된 시각으로 이 사건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죄 없는 나무를 저주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예수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주석가들은 재빨리 이스라엘을 비난한다.


예를 들면, 온 세상에 복음을 나누는 사명을 지닌 www.Bible.com은 이 구절을 이스라엘 민족에 대입시켰다: “이 무화과 나무는 회개가 부족해 심판을 받게 될 이스라엘 입니다. 그들의 삶은 허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삶의 본질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제자들의 반응은 이 나무에 대해 유감을 표하거나 이스라엘의 악운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았다. 대신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당혹해 하는 이유를 밝히셨다.

제자들이 자연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보고도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들이 율법의 모든 면에 대해 민감했던 것을 고려해 볼 대, 다음과 같은 계명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신20:20). 따라서 이 사건을 율법, 이스라엘 또는 자연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나무에 대한 예수의 처분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았던 예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관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세대들은 자연을 하나님에게 불복종하기 쉬운 존재로 이해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배가 고프신 메시아를 위해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는 반항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기괴한 생각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날은 날에게 말하고” (시19:2)와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사55:12)와 같은 구절들을 은유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자연이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는 확고 부동한 유대적 사고이다. 땅이 가인과 공모하여 아벨의 피를 감춘 후에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신 예도 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4:11). 유대인의 해석에 따르면, 땅에 대한 저주는 또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생산하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는 에덴 동산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언급되는 나무이다: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창3:7). 문자적으로 이 구절은 “그리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동산 나무들 속으로…자신들을 숨겼다”라고 말하는데, 유대 전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첫 번째 인간이 그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찬양 받으실 거룩하신 그 분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다. 그리고 그 [아담]는 모든 나무들에게 호의를 얻으려 했지만, 나무들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무들은 그에게 말했다: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창조를 기만한 죄인이다…하지만 무화과 나무는 그를 받아들였다” (얄쿳 쉬모니, 베레쉬트 21).

이 이야기는 에덴 동산에서 인간과 나무의 소통을 묘사하고 있다. 무화과 나무는 유일하게 아담과 하와를 돕고자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에 복을 주사 일곱 종류 가운데 하나로 세우셨다 (신8:8). 반대로, 예수께서 보신 무화과 나무는 (인자이신) 아담을 위해 열매를 제공하라는 기본적인 의무를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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