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462 | 2014-03-05

신앙에서 행동으로

이 세상에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시작이다. 그 다음에는 시작한 것을 완성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성한 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것을 즐기지만, 누군가가 묘목을 심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곤 한다. 즉, 말로만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실행에 옮겨야 한다. 신앙의 경주는 끊임없이 실천했을 때만 그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힘들게 보일 뿐이다. 심지어 가장 쉬운 작업도 시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들어 보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도 조차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실패는 마비 상태,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배의 선장이 어느 항구로 항해해야 할지 모른다면, 어떤 방향으로 바람이 불든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언급된 바람이란 바로 ‘루아흐 하카도쉬’, 즉 성령이다 (히브리어로 루아흐는 ‘바람’ 또는 ‘영’을 의미한다). 신앙인들이 성령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때까지, 즉 수동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마침내 능동적인 실천가가 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가?

수백만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가득 채우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실천하고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미 하셨기 때문에 신앙 훈련을 위해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들은 바리새인의 예복 뒤에 숨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을 실천하고, 신앙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

제자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2-2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갈2:4)는 축복을 가져오는 행동과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의 행위는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정확히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귀신을 쫓아내거나 예언이나 기적을 행했다고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을 돕거나 차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탄원은 하나님 나라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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