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5,558 | 2008-05-14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나요?

◈ 우리 주변에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하기보다 자신의 선함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슈바이처 박사처럼 선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의(義)가 아닌 사람의 의로 이룬 일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과 주님의 의는 다르다.
내가 선해서 하는 일을 주께서 기억하지 않으실 수 있다.
주님으로부터 난 것만이 선하다.
기독교에서 설명하는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되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고도 남을 선한 모습으로 우리를 빚으실 것이다.

◈ 복음적인 접근과 윤리적인 접근의 차이를 구체적인 예를 통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자매가 십자가에 자신의 자아를 못 박아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들었다고 하자.
그 말씀을 듣던 중 문득 자신이 교회나 가정에서 관계의 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사실을 떠올린다.
그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책하게 되고 그 원인이 바로 자기 내면의 약한 부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약한 부분을 지워버리고 아울러 그 힘들었던 일을 잊어버린 다음 자유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사람과의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내면의 어려움도 해결되지 않았다.
성경 읽기, 신앙서적 독서, 금식기도, 성경공부, 부흥회 등에 의지해 보았지만 그 부담감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고 이 문제를 무시하고 그냥 덮어두려고 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여전히 자책감과 자괴감이 소리쳤다.

◈ 또 다른 예가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다.
절박한 마음으로 울다 보면 성령님의 위로가 임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잡게 된다.

“많이 힘들지? 이 문제를 내게 맡기렴.내가 네 안에서 이미 착한 일을 시작했단다.
너를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갈 거야.나를 신뢰하고 믿음 안에서 자유하렴.”
이 말씀 가운데 임하는 위로와 감동의 눈물을 훔칠 때, 마음이 새로워졌음을 느낀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달라져 있는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된다.
담대함과 확신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시리라 믿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성령님께 간구하고 탄식했을 때 주님이 주시는 변화를 덧입을 수 있다.
오직 성령에 의지하여 그분께서 주시는 찔림에 마음으로 반응할 때, 성령님께서 자신의 미쁘신 뜻 가운데 우리를 변화시켜주신다.

† 말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6~18)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 내려놓음 조차 나의 애씀과 노력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하고,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찔림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반응하기 원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