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687 | 2008-10-06

당신은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대하지 않는가?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나머지 부분은 별 어려움 없이 그렸지만 인물들의 얼굴은 마음먹은 대로 잘 그리지 못했다.

얼마간 고심하던 그는 얼굴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얼굴만은 도저히 그리지를 못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 일을 자꾸 미루게 되었다.
예수님의 얼굴을 마저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붓을 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점점 시간을 끌다가 절망감에 빠진 그는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그린 다음, 돌아서고 말았다.
그리고 “이래야 소용없어. 나는 예수님을 그릴 수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 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설명하려고 할 때 나도 다 빈치처럼 절망감을 느낀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거룩함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우리의 지적 이해의 한계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지적이해와 표현 능력을 초월한다.
우리가 아무리 찬양해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다 찬양할 수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 그렇다면 이제 그 거룩하신 분과 그분의 피조물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 알듯이, 거룩하신 분은 거룩한 존재만을 그분의 존전에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판치는 지금의 세상에서, 기독교가 약화되고 감상주의에 빠져 있는 이 세상에서, 교회는 ‘거룩함’의 개념을 거의 잃어버렸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소위 ‘전문화된’ 사역에 힘을 쏟는다는 말이 들린다.
전문화된 사역? 좋다!
그런데 전문화하려면 올바른 것을 전문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하고, ‘저 두려운 것’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면 나는 올바른 것을 전문화한 것이다.

◈ 우리 시대에 ‘거룩함’의 개념은 사실상 거의 실종되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나는 우리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된다.

우리의 완악함을 느끼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끼면서 우리의 완악함을 느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우리의 완악함을 느끼는 것이다.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할 만큼 강력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정말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에게 신속한 처방을 내리고, 그들에게 믿기만 하라고 충고하고, 그들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 적고, 그들에게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지 않은가? 예수님이 그것을 처리해주실 것이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께 문제 해결을 얻어내는 데에만 골몰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 성경에 나오는 신앙인들은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셨다.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이 모였던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주를 섬기며 금식하고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제 나는 당신에게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십니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라고 충고하는 바이다.

당신의 삶, 마음, 가정, 직장 그리고 기억에는 악이 있지만 당신은 이것을 고백하지 않았고 용서받지 못했고 깨끗케 함을 얻지 못했다.

당신이 진멸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인내심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애 3:22 참조).

히브리서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라고 말하고, 또한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라고 말한다.

◈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셨던 과거에는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떠는 가운데 울면서 자기 죄를 깨닫고 진땀을 흘리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이런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이것이 결코 당연시되지 않는다.
우리는 더러움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의 존전으로 성급히 나아간다.

매년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고 교회 건물들이 더 건축되고 더 많은 헌금이 들어오지만, 우리의 영성과 거룩함은 점점 줄어든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권하자마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형제여!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광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을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흙이라는 것을 잘 아십니다”라고 속삭인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흙이라는 것을 잘 아신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합 1:13) 분으로서,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라고 가르치신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털끝만큼도 흠이 없는 거룩한 분이시요 완전히 거룩한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함 자체이심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 A.W.토저, GOD

† 말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5,16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습 1:6,7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말 1:6,7

† 거룩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저의 죄악과 완악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의 거룩하심을 제 영과 혼과 육으로 깊이 체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좇아 살게 하소서
은혜를 받았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