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1,523 | 2008-11-16

당신의 깊은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있나요?

◈ 우리 주변에는 외로움이 넘쳐난다.
외로움은 고층 건물과 목사 사택, 고위 간부 사무실과 백만장자의 고급 주택, 허름한 아파트와 공장의 조립 라인, 술집과 도시의 거리를 가리지 않고 넘본다.

언젠가 테레사 수녀가 말한 것처럼 외로움은 현대 세계의 나병이다.

나는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다.
우리 부부를 통해서 세상에 나온 신기하도록 예쁜 아기,

이 작은 생명체가 나와는 철저히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흐르는 세월과 불의의 사건과 타인의 홀대와 자신의 그릇된 선택과 몸의 노쇠와 결국은 죽음 앞에서 아이의 외로움을 막아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대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의 존재와 삶의 심연까지 온전히 채워 주거나 궁극적 최후의 순간까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다.

우리는 정말 함께할 수 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자아의 조직 속으로 뚫고 들어가 친히 하나로 얽히실 수 있다.
따라서 그분의 사랑의 동행에 싸여 있는 자들은 영영 혼자가 아니다.

◈ 로마서 8장 끝 부분의 위대한 선언은 바로 이런 의미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 37~39)

아무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소중한 이들이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을 향한 염려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최후의 완전한 복이자 궁극의 선, 즉 인류의 최고선은 그리스도의 도에 잠겨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찾아온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주의 앞에는(임재 안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왜?“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시 23:4).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외로움을 없애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은, 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의 분리가 궁극적 고통과 형벌인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두려움 중에 부르짖는다.
“나를 주 앞에서(주님의 임재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1)

◈ 물론, 하나님의 인격과 임재를 구하는 이유로 외적인 유익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의 많은 종교를 보면 신의 은총을 구하는 이유가 주로 그런 유익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로 자신의 상황을 바꾸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할 바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 13:5~6)

이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나쁜 일을 전혀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그분의 임재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닥치든 우리는 늘 진짜 해악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만족은 선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선물의 공급원이신 그분의 임재로 인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시련을 당해도 넉넉히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롬 8:39)

◈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의 임재의 붙드시는 능력은 고금을 통해 병상과 묘지에 기쁨과 승리를 주었고, 상한 마음과 깨어진 관계를 고쳐 주었고, 노역과 가난과 노화에 영광을 더해 주었고, 순교자의 화형대와 교수형 밧줄을 대관식의 장소로 바꿔 놓았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는 본향에 들어설 때 “안식하며 볼 것이요, 보며 사랑할 것이요, 사랑하며 찬양할 것이다. 이것이 끝없는 끝에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바로 그것을 위해 지음받았다.

우리의 현세의 소명이자 영원한 소명은 이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음성

† 말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下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下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121:1~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할 때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시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제게 있다 할지라도 제 심령은 공허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늘 거하기 원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저를 묶어 주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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