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560 | 2014-03-05

은총

구약과 유대 신앙에는 ‘은총’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유대 신앙이 노력으로만 의로움을 이루는 종교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거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며, 오늘날에도 일부 극보수 유대정통 종파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은총을 일컫는 히브리어 단어는 헤세드인데, 유대인 랍비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것은 미돗, 즉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이 단어는 ‘자비’ 또는 ‘연민’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유대 신앙에 따르면 헤세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헌신과 사랑의 돌보심이며, 그분의 신실하심과 긍휼, 언약을 통해 나타난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시25:6)

은총은 사랑과 헌신 가운데 구현되며, 은총을 통해 우리는 짜디크(의로운 자) 또는 하시드(독실한 자)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면류관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상반되어 보이는 그분의 두 가지 본성 즉, 미닷 하딘(엄중한 정의)와 미닷 하라하밈(자비와 긍휼하심)을 통해 강조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 따라서 성전의 가장 중심은 번제를 드리는 제단이 아니라 지성소에 있는 자비의 자리(카포렛),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였다.

신약에서 은총(헬라어:카리스)은 대부분 구원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요소로 이해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토라]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6-17).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즉, 구약에서 하나님의 은총은 그분의 엄격함보다 훨씬 강하다.

Picture - 자비의 자리: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 언약궤는 율법보다 은총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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