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1,570 | 2009-06-03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라!

◈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완전히 엎드려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왔다.
복음서를 살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 오는데, 이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 본문에서는 문둥병 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나왔는데, 이것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취하는 가장 뛰어난 존중의 표시이다. 즉, 예수님을 향해서 이 사람은 완전히 자기 스스로를 겸손케 하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많은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아주 정중하게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 문둥병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나아왔다.
5장 12절의 ‘구하여 가로되’ 라는 말씀은 ‘간청했다’라는 뜻이다. 즉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고 나온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 나올 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라는 것을 믿고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으로써, 지금도 그분은 믿음을 가지고 나온 문둥병자를 치유해주신 것처럼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며, 자유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눅4:18절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s)의 실증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온 문둥병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라는 것을 믿고 겸손한 태도 가운데 나아왔지만, 예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는 것 까지는 모르고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주여 원하시면’이라고 예수님께 간청한 것이다.

◈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베풀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간청한 것은 ‘나를 만져주세요’ 가 아니라 ‘나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였다. 왜냐하면 그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져 병 있는 날 동안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 진 밖에 격리되어 살았으며(레13:46), 그를 만진 사람조차 부정하게 되어 자기와 같이 불결하게 여겨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서신 채로 ‘나음을 입어라’라고 말씀으로만 하실 수 있었지만, 친히 손을 내밀어 전염성이 강한 문둥병 들린 사람을 만지신 후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치유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병이 전염될 것을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으셔서 만지신 것을 넘어선 그분의 깊은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은 항상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향해서 ‘내가 원한다’라고 하셨을 때는 우리를 향해서도 원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만지지 않는 자를 만지시며, 우리 삶의 가장 불결한 곳을 만지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가운데서 숨기고 있는 불결한 죄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토록 숨기고 있는 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만지시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분만이 아니시라 깨끗케 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육체적인 치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
이제 이 새롭게 된 사람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며 사회 공동체 가운데로 들어가 살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에 대해서 상상해보라. 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족들의 일원이 문둥병에 걸린다는 것은 그가 죽는 것보다 더한 슬픔과 고통인 것이다. 왜냐하면 가족이 살아있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홀로 격리되어 진 밖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가족들에게 있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난 것이나 마찬가지의 경험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향해서 하시는 일이 이와 같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와 기적들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회복되어짐으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되는데 초점을 두고 계셨던 것이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대로 하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치유하신 후 아무한테 말하지 말라 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아무한테 말하지 말라 하셨을까? 병행 구절인 막1:45절을 보면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함으로 예수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로 예수님의 사역의 근본적인 방향인 하나님의 나라의 전파에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그분과 더불어 논쟁하거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말고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의 방법과 지혜가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나시다.

◈ 치유와 구원은 예수님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신성한 교환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그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율법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레위기 14장의 문둥병자의 정결규례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레14:4-7에서 나오는 산 새 두 마리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원한다. 이 본문을 보면 두 마리의 새 중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죽이고 다른 한 새는 산대로 흐르는 물 위에서 죽인 새의 피를 찍어 바른 후 깨끗케 된 자에게 뿌린 후 들에 놓아 주게 되는데, 두 마리의 새는 옛 아담과 새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흐르는 물은 성령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흐르는 물 위에서 죽임 당한 새가 되심으로 또 다른 새가 되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친히 피 흘리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가져가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피 흘리신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때 우리의 죄와 예수님의 생명의 신성한 교환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그 생명이 우리를 만지실 때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신성한 생명이 우리에게 입혀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이 주어졌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그 분은 대가를 치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이러한 은혜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신성한 은혜를 존중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은혜를 받았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