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6,609 | 2009-08-02

언제까지 나를 위해 살 것인가?

당신의 자아가 얼마나 낮아졌고, 당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높아지셨는가? 이런‘자기부인’의 시험은 우리 삶의 거의 매 순간 찾아온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모든 요소의 논리적 결론(실제적 적용)은 다음 말씀에서 발견된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한 바울의 위대한 선언이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과거의 바울처럼 자신을 위해 산다. 이기심은 죄악 된 삶의 동력이다. 이기심이라는 동력이 인간의 선천적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섬기고,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

성경은 종종 죄를 이기심으로 묘사한다. 이사야서 53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가 제각기 간 길은 양들의 성격이나 취향만큼이나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은 모두 ‘자기의 길’을 고집했다. 디모데후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충격적인 표현으로 지적한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이 말씀은 우리 시대의 역겨운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겠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기준 삼아서 모든 결정을 내린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권리를 찾겠다고 아우성이다. 뻔뻔스러운 남자들과 여자들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을 오히려 자랑한다. 그들은 자기들 뜻대로 행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철학은 이런 현상을 정당화하고 옹호한다.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없다. 현대인들의 사랑의 주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죄악의 마음은 자기의 사사로운 의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아합 왕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하여 400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미가야 선지자가 홀로 그의 의견에 반대했을 때 매우 분개했다. 자기사랑은 죄악 된 감정을 더욱 부추긴다. 자기사랑으로 가득한 의지는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데 목숨을 건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의‘다시는’이라는 바울의 표현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도 전에는 나를 위해 살았다. 나는 정통 유대교를 따르는 열정적 신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나는 나의 의를 위해 수고했으며, 바울이라는 존재를 위해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삶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자기부인월터 J. 챈트리 | 규장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로마서 6장6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에베소서 4장22절~24절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 살았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 ‘내’ 육신의 안락함, 제 삶의 모든 판단이 ‘십자가’보다는 ‘자아’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매일 고민으로 다가오는 자기부인의 시험을 이제는 마땅한 것으로 받아드려 믿음으로 자아의 문제를 헤쳐나가길 소원합니다. 주님, 이 마음에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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