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8,229 | 2010-04-26

조용한 증인도 증인인가?

성경본문:눅12:12-21영상:1시간31분 / 291MB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영은 결국 타협을 가져온다. 요한복음 9장을 보자. 태어날 때부터 눈 멀었던 자를 예수님께서 고치셨다.

그런데 이에 그의 부모는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그들은 권세를 가진 바리새인들이 두려워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악의 아주 견고한 진이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시인하거나 부인하든지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나도 저를 시인하리라(눅12:8).”

조용한 증인은 좋은 증인이 아니다. 증거를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증인이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12)’라 말씀하셨다.

사람이 두려운가, 하나님이 두려운가? 심판 날의 기준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자들’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는 진리에 타협 없이 명확하게 서야 한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불의한 자기의 사정을 가지고 나아왔다(13절). 의로우신 주님 앞에 나온 것은 제대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의외의 답변을 하셨다.

”누가 나를 너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이 말은 예수님은 그 상황에 대해서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지적까지 하셨다.

“네 마음에 있는 탐욕을 물리치라, 눈에 들보를 먼저 제거하라.” 예수님은 불공정한 것에 신경을 안 쓰는 분이신가? 아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과 같지 않은 분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이다.

십자가가 가장 불공정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제가 판단 받으리니...”말씀하셨다.

이것은 판단이 없어진 것이나 약해진 것 아니다. 의로운 것을 다 따지고자 하면 우리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훨씬 더 큰 높은 기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심판을 이기셨다. 심판 자체는 맞다. 그러나 그 위에 자비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것은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용서하심을 구했다. 십자가를 통해서 자비가 심판을 이긴 것이다. 우리가 불공정한 것을 외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더 큰 자비로 용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의는 아주 극단적인 자비이다. 극단적인 용서이다.

더 높은 법, 예수님의 자비로 살아가라.

지금의 시대는 물질이 쌓여있고, 공적들이 쌓여있으면, 성공했다라고 본다. 그런데, 죽고 나서도 이러한 것을 계속 쌓을 수 있다고 보는가?

영원히 남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물질이 얼만큼 쌓여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영혼을 도로 찾으시는 시간이 있다(20절).

영적인 부요함으로 살아가라. 하나님 안에서 부요하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풍성한 자로 살아가는 삶이다. 사람들을 향해서 자비를 베푸는 삶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높이 올리신 기준, 즉 예수님이 자비로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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