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6,772 | 2010-07-01

이만하면 됐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두드러진 경향의 하나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에 만족한 채 영적 유아의 상태로 죽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큰 죄는 가나안 어귀에서 머뭇거릴 뿐,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입성의 경이로운 영광은 그들의 무기력하고 소심한 전진에 의해 축소되었다.

성장이 없는 상태, 마귀와의 전투가 없는 상태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은 우리를 마귀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시키는 위험한 태도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는 잘 달리고 잘 싸우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달음박질과 싸움을 갑자기 중단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영적 성장은 중단되고 마귀가 즉각 행동을 개시하여 손쉽게 승리를 챙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고전 3:1)이라 칭한 것은 사실에 근거한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성도의 본분을 망각하고 육욕으로 돌아갔고 성결함과 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한 죄와 퇴보는 그들이 어린아이들 같았다는 점이다.

이런 어린아이들의 그리스도교가 오늘날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아이 상태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그리스도인이 40년간 아이의 모습 그대로라면 그것은 끔찍한 기형이다.

영적 정체는 구원의 시작 단계에서만 제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영적 발전의 열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그 발걸음이 중단되는 일이 영적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거나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넋을 빼앗긴다. 그래서 그들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천국을 향한 여정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달래 달콤한 잠에 빠지며, 열정을 잃고, 자기들이 열정을 상실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발걸음으로 천국을 향해 전진하는 대신,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상상으로 뒤덮어버린다. 그들의 마음은 높은 영적 단계에 도달한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환영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며 자신들이 다시 골짜기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이 상태로 매우 행복해한다. 그래서 그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일깨우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홍해에서 구원을 체험한 후에 약속의 땅까지 가려면 피곤하고 고생스러운 발걸음을 수없이 떼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기란 무척 어렵다. 심지어 갖은 고생을 하며 광야를 지난 뒤에도, 요단강이 쩍 갈라진 뒤에도, 그들의 발이 가나안의 성별된 흙을 밟은 뒤에도 많은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온전히 소유하려면 수많은 적들을 무찔러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이 성화聖化를 노래하고 외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군하고 싸우는 믿음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를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고, 광야처럼 메마른 것으로 노래하고 소리치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_빌 3:13,14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과정을 밟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음으로써 이미 얻은 것들을 꼭 붙잡아야 할 것이다.

바울의 생애는 놀랍기 그지없지만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싸우기, 달리기, 경계’로 요약했다. 이것이 바로 지속적인 발전의 세 가지 요소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선 전투의 부분적인 승리의 감격으로 비롯된 ‘일시적 싸움 중단’이라는 사기를 꺾는 악영향에 의해 수많은 전투에서 패하고 있다. 절반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들이 땅을 뒤덮고 있을 때 자기 위치를 지키며 행군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리라.

하늘 아래 영적 정체의 위험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도무지 없다.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이 전진을 위한 경계와 투쟁이 되어야 한다. 영적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은 그리스도인의 초기 단계이든 발전 단계이든 간에 우리를 마귀의 공격에 노출시킨다. 영적 미성숙은 언제나 우리를 사탄의 공격에 취약한 자리에 둔다.

우리의 영적 보화를 날로 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견실함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견실함을 확보하고 유지할 때 우리는 사탄을 압도하여 승리할 수 있다. 우리 믿음이 정체 상태에 놓이면 우리는 믿음을 잃게 된다.

기도로 원수를 밟으라E. M. 바운즈 | 규장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린도전서 13장11절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 히브리서 6장2절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한복음 17장19절

주님, 주님의 그늘 아래 안락과 평화만을 취하려 했던 어린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천국을 향해 전진하는 믿음 갖길 원합니다. 연단의 고통으로 더욱 성장하게 하시고, 주님의 용사로 쓰임 받는 종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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