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2,958 | 2010-07-16

약하기 때문에 더 열렬히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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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축복만 구하는 우리의 모습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18, 22-24)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1:1)”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다윗도 좋아한다던 이스라엘. 그런데 이들은 조상들이 기다렸던 예수 그리스도는 싫어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린다고 했던 그들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는 이 모순이 어떻게 가능한가?! 존재적으로 문제가 있는 죄 된 인간의 모순, 인간내면의 본질이다.

‘에서의 통곡’이라고 들어봤는가. 사나이답고, 매력적이며 통 큰 남자이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아주 멋진 사람이다.

구원, 십자가, 부활, 이 모든 것은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인기, 명예, 부, 성공과 같은 것을 따르는 마치 “팥죽 한 그릇” 만큼 복음을 생각하지 않는 오늘날의 교회는 에서와 비슷하다.

이런 장자의 명분에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던 에서가 통곡을 하는 때가 왔다.“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 넘어간 때였다. 이때 에서는 통곡했다.

장자의 축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도, 본질적인 장자의 명분에는 관심도 없는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복음의 본질은 싫지만 복음의 축복은 그렇게도 원하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 동일하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태도는 오직 믿음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죄와 나를 분리할 수 없는 이 비극적인 운명. 죄의 권세 아래 붙들려 있는 죄 곧 나, 나 곧 죄인.

전능하신 하나님도 나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다른 길은 없고 당신 스스로가 심판 아래 들어가야 하는 십자가 밖에는 없으셨다.

하나님은 전 역사와 존재를 동원해서 차근차근 이 일을 이루어 오셨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말해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 스스로 이 약속을 성취하신 그 분은 사랑이시며 전능자이시다.

스스로 언약을 지키시고 성취하신 그분 앞에 우리의 태도는 오직 믿음이다. 실패가운데 있다면 나의 실패로 끝을 삼지 말라. 처음부터 인간은 주님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들 아니었는가!

혹 내가 의지했던 것 빨리 무너지는 것은 은혜다. 우리가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지 않으시고 주님 스스로 이루시며 붙드신다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는 어려움에 부딪치고, 산도 물도 불도 넘을 것 같다가도 사람의 오해 한번 받으면 털썩 주저앉고 싶은 것이 사람의 연약함이다.

염려하지 말라. 우리보다 붙드시는 주님이 완전하시다.“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주님은 인생을 두시고 목적하신 그분의 뜻과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언약의 주체이신 주를 바라라!

영원한 생명을 받으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사형선고를 받아놓은 죄인의 감옥 방을 호텔처럼 만들어 놓고, 좋은 식사를 줘봐야 복음이 되겠는가.

심판을 앞두고 있는 죄인 된 우리들에게 진정한 복음은 사단의 억압에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하나님 없는 끔찍한 저주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 두려움, 스스로를 저주하고 미워했던 것 이제는 감추지 않고 더욱 자랑한다. 연약하고 두렵기 때문에 더 주님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하기 때문에 더 열렬히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20)”

우리의 한계와 수준을 넘어선 일을 위해 나아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복음에 올인 하기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주님의 일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오직 성령으로 가능한 일이다.

인간적 경험이나 계산, 추측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제하라. 주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내게 속한 모든 것의 철저한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역사적이고 객관적으로 철저하고 완벽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았는가!

언제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자신의 죽음이 실제가 되었는가. 죽음 없는 부활은 없듯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늘이 가기 전, 이 시간이 끝나기 전, 십자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십자가 앞에 나와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라.

또한 복음과 공동운명이 된 삶을 취하라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마치 복음과 운명을 같이 하기를 두려워 말라” 복음과 운명을 같이 하는 자, 복음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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