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2,011 | 2010-09-07

이것은 내 친구 재완이와 나의 아이템이다.

재완이는 뒤틀린 손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썼다. 굳어진 손으로 글 하나 적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쓰고 또 쓴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이 험한 세상에서 희망을 일구고, 사랑을 꿈꾸고, 하늘이 주신 이 생生의 텃밭을 일군다.

“야… 이 시 못 썼다….”
다시 찾은 거리에서 재완이가 시 노트를 건넨다. 꾸불꾸불 지렁이가 기어가는 글씨, 뒤틀린 손으로 힘겹게 꾹꾹 눌러쓴 시들.

“글씨체가 예술이네.”
구불거리는 굴곡마다 집념이 서리고 처연할 만큼 아픔이 스미어 있다.

“어제 밤에 방송에서 보고 생각한 건데… 잘 안 써져.” 티브이를 즐겨보는 재완이는 정치와 시사에 관심이 크다. 이젠 체념하고 무감하게 그저 지나치는 나와 달리 현실에 열심을 보인다. 쿠르드 난민에 대해서 쓰다가 만 시였다.

터키 쿠르드 난민에 대해서 들었다
그들 땅에 석유가 있디(다)고
터키 정부군들이 와서 폭격을 하고
마을에 들어와
강제로 네쫏(내쫓)는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게릴라가 되어 자기 땅을


여기까지 쓰다가 더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멈추었다. 오전 내내 불던 바람은 사라지고 햇살이 뜨거웠다. 요나처럼 박 넝쿨 아래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강렬함….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마다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는 마로니에 잎사귀 작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다시 그 시를 읽어보았다.

터키의 변방 산악지대에 사는 쿠르드 난민들, 친구 S가 그들을 위해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해서 처음 들어본 정도다. 아브라함 때부터 광야를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것 외에 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가 엉망이지?”
“아니, 완성을 해봐. 근데 여기 앉아서 쿠르드 난민이 다 생각나냐? 장사도 못하면서….”
“우린 다 같은 형제야, 누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점심을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이 있을까?’문득 존 던John Donne의 시가 생각났다.

그 누구도 온전한 섬으로 존재할 수 없나니
모든 개인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를 이루는 일부이다
(…)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상실이니
나는 인류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라
그러하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려 하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에
_존 던, 중에서

하오의 부서지는 햇살 아래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 재완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골목길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뭐라 하지 않고 혼자 남아서 재완이의 액자들 옆에 서 있었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 자신의 상실이니….’
‘우린 다 같은 형제야….’
나는 아직 쿠르드 난민까지는 생각지 못한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게릴라가 되어야 할 까닭을…. 저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도르를 둘러쓰고 어둠의 시절을 관통하는 어린 누이의 메마른 길들을….

그런데 재완이는 그들을 생각하고 있다. 이 광화문 거리에서. 이번엔 내 입에서 “하…” 하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재완의 낡고 때에 절은 시 노트를 무심히 뒤적였다. 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지렁이 글씨 하나가 마음을 붙든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남들한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더욱 나도 잘 댈(될) 것이다


교과서 같은, 정직한 아이의 다짐 같은 글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재완이가 찾던 새 아이템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 가만히 다시 그것을 읽어본다.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서 나의 남은 지체들을 위하여 이 변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천국의 희망과 용기를 배양培養하는 자유. 그리하여 언젠가 그 남은 부분이 내 몸으로 느껴질 때까지 아니, 그렇지 않다 해도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 그것이 사랑을 향한 내 친구 재완이와 나의 아이템이다. 진정한 새로운 아이템이 올 때까지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온유한자는... + 내꿈은사랑입니다김우현,정재완 | 규장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 갈라디아서 5장13절,14절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요한일서 4장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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