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943 | 2014-03-05

성경시대 풍습으로 이해하는 성경 -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요19:23,24)

공생애 사역 마지막 유월절에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사복음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은 십자가 형을 집행한 후에 십자가 밑에서 벌어지는 로마 군병들의 행동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성서시대 남녀의 옷은 5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예수님의 옷 가운데 4가지는 군병들이 하나씩 나눠 갖고 마지막 남은 ‘속옷’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부분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우스꽝스럽고 별 의미 없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시편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를 드러내려는 요한복음 저자의 의도가 숨어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8)로마 군병들은 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고 제비뽑기를 한 것일까? 그리고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속옷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통으로 짠 속옷과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은 것은 무슨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옷감 짜기와 하나님의 계시

주전 2세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지혜서인 ‘시락’(Sirach)서에는 인생의 필수품으로 ‘빵, 물, 옷’의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3가지 필수품인 ‘의, 식, 주’에서 집에 해당하는 ‘주’가 빠지고 대신 ‘물’이 들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광야의 환경인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고는 ‘빵과 물과 옷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6:25)

옷이 필수품이라고 하지만 태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태초의 아담과 하와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벌거벗은 상태로 다녔기 때문이다.“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5)

이들이 비록 원시적인 형태일지라도 옷을 걸치기 시작한 것은 범죄한 이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서로를 향한 부끄러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각자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물론 인간 상호간의 관계성도 깨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커플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 상호간의 유대감도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범죄한 인간은 단지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옷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옷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감과 인간 상호간의 유대감을 위한 것이었다.유대인들의 사상에서 옷감 짜는 기술은 그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꿈과 계시를 통해 태초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성막 기술자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막의 천을 짜는 기술을 포함해 성막의 기명을 다루는 기술을 하나님의 신에 충만한 가운데 받게 되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 놓은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출35:30-35)고대 근동 지방의 문화에서 옷감짜는 의식은 이교도들의 종교 예식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이것은 ‘옷감짜기’가 오늘날의 개념으로 단순히 옷을 만드는 의미를 넘어선 신성한 종교예식의 일부분으로 행해진 것임을 보여준다.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에 성전 안에 있던 미동(음탕한 종교행사에 바쳐진 남자 창기)의 집을 헐어버렸는데, 그곳에서는 여신인 아세라를 위한 옷감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옷들은 우상의 형상 위에 아름답고 화려하게 입혀주면서 이교도적인 우상숭배가 행해진 것이다.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왕하23:7)

이스라엘에서도 므깃도, 다아낙 같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도시에서는 이교도적인 종교행사가 많이 행해졌는데, 종교행사장 주변에서는 옷감을 짜는 베틀의 방추돌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에서 옷감짜기가 신성한 종교예식의 일부분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

씨줄(수직의 실)과 날줄(수평의 실)로 불리는 두 줄의 실이 만나 옷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고대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날줄’은 남성을 상징하고 ‘씨줄’은 여성을 상징하는데, 남녀가 연합해 새 생명을 잉태하듯이 날줄과 씨줄의 실이 서로 만나 옷감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고대인들의 생각이었다.

실 잣기, 옷감 짜기, 염색 등으로 이어지는 옷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인생의 생로병사 과정의 반복을 의미했다. 이렇게 탄생한 옷은 한 개인을 남과 연결시켜주고, 더 나아가 태초의 조상과 먼 미래에 탄생할 후손과도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일반적인 속옷은 씨줄과 날줄로 불리는 두 줄의 실로 만든 옷감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옷감을 붙여 끝에 솔기를 대서 꿰매면 하나의 속옷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호지 않고’(솔기를 대지 않고, seamless) 통으로 짠 예수님의 속옷은 분명 특별한 옷이었다. 이것은 ‘날줄’로만 짜서 만든 한 개의 옷감으로 된 옷이었다. 이런 옷은 그 실밥을 뜯어서 계속 풀다 보면 기다란 한 개의 실로 풀려질 것이다.

이처럼 씨줄이 없이 ‘끝없는 날줄’로만 만들어진 옷은 고대의 여러 문화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즉 창조주와 연결되는 족보, 연속성, 더 나아가 개인의 족보가 그러한 연속성 가운데 영원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옷이었다.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위로 계속 올라가 결국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 더 나아가 하나님과 연결된다.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3:37,38)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의 속옷이 일반인들의 속옷과 달리 호지 않고 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끝없는 날실로 만들어진 옷을 강제로 찢는다는 것은 ‘신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고대인들이 공유했던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에 대한 개념으로 인해 로마 군병들도 함부로 이 옷을 찢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요19:24)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그 밑에서 몇 푼 되지도 않는 죄수의 옷을 나눠 갖는 로마 군병들의 모습은 거룩함과 포악함이 극적으로 교차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교차를 통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당시 대제사장들이 입던 ‘통으로 짠 속옷’을 포악한 로마 군병들이 감히 찢지 못한 행동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영적인 파워와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족보, 즉 하나니의 아들로서의 신적인 권위를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형은 완전한 나체로…

당시 로마 군병들은 4명이 한 조가 되어 십자가 형을 집행했다. 유대인 남자들의 옷은 5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4명이 각각 하나씩 갖고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이었다. 로마 군인들은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가이사랴의 로마 총독부에 주둔하고 있다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이들에게는 종교적인 촌구석에 불과한 예루살렘으로 파견을 나온 것이다.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형을 집행하면 죄수의 옷을 취할 수 있었고 이걸 갖다 팔아 가이사랴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라도 한 잔 거나하게 들이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명은 샌달을, 한 명은 터번을, 한 명은 겉옷을, 한 명은 허리띠를 각각 찜 했다. 마지막 남은 속옷을 찢어서 4토막을 내서 나누어 가질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의 속옷은 호지 않고 통으로 짠 특별한 옷이었다. 이들은 감히 이 옷을 찢지 못하고 제비뽑기를 해서 한 명이 가짐으로써 온전하게 옷이 유지된 것이다.

결국 당시 유대인 남자들이 걸치던 5개의 옷이 모두 로마 군병들의 손에 넘어갔다. 십자가 형을 당하는 로마의 죄수들은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나체로 노출되었다. 흔히 십자가 형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다루는 영화나 성화를 보면 예수님이 최소한의 가리개를 걸치고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은 역사고증 면에서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나체로 십자가 형을 당했을 것이다.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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