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155 | 2014-03-05

유대인 절길로 이해하는 성경

대속죄일과 아사셀 염소(2)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같이 희어진다

광야의 무인지경에 풀어놓던 아사셀 염소의 운명은 예수님 당시에는 몬타르 산으로 불리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할 때에는 아사셀 염소의 운명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진이 이동하고 광야에 홀로 남은 아사셀 염소는 결국 죽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광야의 무인지경에 풀어 놓은 아사셀 염소가 다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나타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속죄일의 행사가 무색해 지는 것이 아닌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에서 죽어야 할 아사셀 염소가 다시 찾아와 ‘너의 죄가 너를 찾을 것이요 또 그것이 너를 지배할 것이라’는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를 유대 광야 끝자락에 있는 몬타르 산까지 데리고 가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확인사살’(?)함으로써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미연에 막았다. 이 때 붉은 실타래를 아사셀 염소의 뿔과 바위 사이에 묶고, 염소의 눈을 가리우고 뒤로 밀어서 떨어뜨림으로 염소가 느낄 공포감을 최소화했다. 이 때 염소가 떨어져 죽고 바위에 남은 붉은 실타래가 흰색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는 곧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 것을 의미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성서시대에는 대속죄일 행사를 마친 후에 여자들이 흰옷을 입고 마을에 있는 포도원에 모여 큰 원을 만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흰옷이 없는 사람은 빌려서라도 입고 나와야 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를 연상하게 한다. 이는 죄가 깨끗하게 씻김받은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행사였다. 대속죄일 외에도 성전에서 사용할 목재를 수집하는 것을 종결 짓는 ‘투베아브’(8월경)라는 절기에도 여인들이 흰옷을 입고 포도원에서 같은 행사를 했다.

이 행사에는 젊은 남자들도 참여해서 구경을 했는데, 이곳에서 선남선녀들의 짝짓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파 내에서의 결혼이 장려되던 성서시대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포도원 축제에서는 지파의 구분없이 전국에서 모여든 선남선녀들이 서로의 배우자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베냐민 지파의 패역함으로 인해 사사시대 말기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내전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는 600명만 남기고 전멸당했다. 자칫 한 지파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삿21:2,3)이 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400명의 처녀를 충당하고 나머지 200명은 실로의 포도원 축제에서 처녀 서리를 함으로써 충당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600명의 베냐민 지파 남자들을 위한 배우자를 맺어주고 지파의 존속을 유지시켜 준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실로의 포도원 축제 역시 ‘투베아브’ 또는 대속죄일 오후에 행해진 것이다.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삿21:19-21)

대속죄일과 금식

대속죄일과 관련된 성서시대 유대인들의 공통된 의무는 ‘금식’이었다. 대속죄일의 금식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유일한 공식적인 금식일이다. 그래서 단순히 ‘금식하는 절기’라고 표현하면 곧 대속죄일을 의미했다.

사도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배는 미항에서 뵈닉스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이 때는 ‘금식하는 절기’인 대속죄일이 지난 때였다. 대속죄일은 유대력으로 일곱 번째 달인 ‘티슈레이 월’ 10일인데, 이는 국제달력으로 10월에 해당한다. 지중해는 10-12월까지는 풍랑이 거세서 로마시대에는 항해가 금지된 기간이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행27:9)

이스라엘은 성전 파괴와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복잡한 금식의 절기들을 만들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파괴된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국가에 흩어져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온 것이라는 영적인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점차 ‘금식을 통한 회개’가 아닌 ‘금식’ 자체에 만족하는 건강하지 않은 종교적 운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바벨론의 포로들이 귀환한 이후에 활동했던 스가랴 선지자의 선포를 통해 볼 때 이미 대속죄일 이외의 4개의 금식일이 당시에 보편적으로 지켜진 것을 알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슥8:19)

4개의 금식일은 각각 그 날에 일어난 슬픈 기억들을 기념하고 있다.

4월의 금식: 유대력 넷째 달 탐무즈 월 17일,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과 매일 드려진 상번제의 금지, 금송아지 우상과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깨뜨린 날

5월의 금식: 유대력 다섯째 달 아브 월 9일,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날, 애굽에서 나온 모든 시체가 광야에서 엎드러진다고 선포된 날

7월의 금식: 유대력 일곱째 달 티슈레이 월 2일, 미스바에서 그달랴와 동료들이 암살된 날(렘41:3)

10월의 금식: 유대력 열번째 달 테벳 월 10일,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포위가 시작된 날

예수님 당시에는 4개의 큰 금식일 외에도 22개의 추가적인 금식일이 있었다. 당시에 금식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경건과 외식의 대표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금식일 외에도 추가적인 금식일을 지키며, 일반 사람들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종교적 열심을 보여주었다. 즉 유월절과 칠칠절 사이와 초막절과 수전절 사이의 기간 동안 월요일과 목요일의 주 2회를 추가적으로 금식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목요일은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이고, 월요일은 율법을 받고 내려온 날이라고 한다. 금식은 해가 지면서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 지속해야 했는데, 모든 음식과 음료수 일체를 금했다.

금식과 관련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유행을 알고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보다 새롭게 와 닿을 것이다.“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래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9:14)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6)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눅18:11,12)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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