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5,149 | 2011-06-12

‘형통’하게 살고 싶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요셉은 진짜 형통한 삶을 살았을까? 사실 세상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요셉만큼 형통하지 않은 인생도 없다. 어릴 때부터 형들에게 모진 구박과 핍박을 당했고 급기야 형들에 의해 다른 나라의 노예로 팔려간 인생이 어디를 봐서 형통한 삶이겠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형통, 우리가 목말라하는 형통, 우리가 갈구하는 형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통과 괴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은 과연 무엇일까?

창세기 39장에서 형통을 설명하는 표현 전후에 어떤 설명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_창 39: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_창 39:23

창세기 39장 3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앞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라는 전제가 나온다. 23절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거기가 축복의 자리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비꼬는 말 중에 참 가슴 아픈 말이 “예수 믿는 사람이 더 하다”는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성공에 집착하는지 세상 사람과 마찬가지로 뇌물이나 세금 포탈을 일삼는데, 거기에 ‘예수’ 이름까지 동원해 성공을 빈다는 것이다.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예수께 부르짖는 것이 세상적인 성공과 형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형통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대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형통이다.

옛날 어른들이 즐겨 부르던 찬양,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눈물로 부르던 찬양이 무엇인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_내 영혼이 은총 입어(새찬송가 438장)

바로 이것이 형통이다.

보호하심이찬수 | 규장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잠언 8장17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장4절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 신명기 31장8절

주님, 제 삶도 간섭하여 주시고 선한 인도하심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의 음성에 더욱 민감한 자가 되겠습니다. 요셉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저에게도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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