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110 | 2011-10-13

‘반대로’ 살아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독교 신앙 체계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설(逆說)’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타락한 인간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거부할 때 기독교의 능력이 나타나는 법이다.

십자가의 진리는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에서 드러난다. 교회의 증거가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교회가 ‘설명할 때’가 아니라, ‘선포할 때’이다.

복음은 이성(理性)이 아닌 신앙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증명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앙이 필요 없다. 신앙은 실험이나 논리적 증명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다.

십자가는 ‘자연인’(自然人), 즉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완전히 대립된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철학은 자연인의 사고(思考)와 정면충돌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단언했다(고전 1:18 참조).

십자가의 메시지와 인간의 타락한 이성이 함께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공통의 지반(地盤)을 찾으려는 것은 불가능을 이루겠다는 시도이다. 이것을 계속 고집스럽게 시도한다면 이성의 손상, 의미 없는 십자가 그리고 무력한 기독교를 초래할 뿐이다.

이제 참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이성적(理性的)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살펴보자.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고 믿지만 전보다 더 충만한 삶을 누리며, 또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 땅에서 활동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앉아 있다. 비록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중생(重生) 후에는 더 이상 이 땅이 고향이 아님을 믿는다.

공중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땅에 내려오면 서툴고 보기 흉한 쏙독새처럼 그리스도인은 천상(天上)의 자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살아가는 방법들과는 잘 조화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아들로서 이 땅의 사람들 중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는 안전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잃어버린다. 만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시도한다면 오히려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낮아지기를 거부한다면 이미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진다면 이미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고, 가장 강할 때 가장 약하다.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부유해지면 그 능력이 사라진다.

남에게 가장 많이 주면 자신이 가장 많이 소유하게 되고, 가장 많이 소유하려고 하면 가장 적은 것이 남는다.

가장 낮아졌다고 느낄 때 가장 높이 있으며, 자신의 죄를 가장 많이 깨달을 때 가장 죄가 적다.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달을 때 가장 지혜로우며, 자신이 가장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믿을 때 실상 가장 무지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가장 멀리 가는 것이다.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있으며, 슬픔 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

철저한 십자가A. W. 토저 | 규장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고린도전서 1장18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2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요한복음 12장25절

십자가 신앙은 오늘 나의 능력이 됩니다! 주님, 오늘도 세상에 발 디디며 살고 있지만 제 마음의 중심은 언제나 주께 향하겠습니다.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십자가의 진리를 따르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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