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4,462 | 2011-12-22

당신은 ‘힘센 전사’인가? ‘허약한 패잔병’인가?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상처투성이의 기드온을 나라를 구할 사사로 부르셨다. 이것도 놀라운데 그를 뭐라고 부르시는가?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_삿 6:12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여기에 나오는 ‘큰 용사’를 영어성경으로 보면 ‘mighty warrior’, 즉 ‘힘센 전사, 강력한 전사, 영웅’이란 뜻이다.

당시 기드온은 몸과 마음이 약해져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삶 역시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옹색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기드온에게 ‘힘센 전사’라는 호칭이 가당하기나 한가?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핵심이다.

기드온과 같은 사람이 육안(肉眼)을 가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영안(靈眼)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의 눈에는 ‘힘센 전사’일 수 있다.

목회자의 경우에 보면 목회 규모와 상관없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실패한 목회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신 반면, 아무리 규모가 작은 목회를 하더라도 하나님나라의 큰 용사로 살아가시는 분이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내가 나 자신을 어떤 눈으로 조명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영적인 세계이다.

우리가 왜 기도하는가? 영안을 뜨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열심을 내고 있는 특별새벽기도회의 목적이 일확천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요행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 나를 바라보는 자기 인식의 눈이 확장되는 것이다.

영적인 시각 없이 육안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조금만 잘나가도 교만해져서 기고만장하게 행동하고, 또 조금만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면 열등감에 빠져서 ‘나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기비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영안을 가지고 자기를 인식하면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비록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고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힘센 용사’로 인정해주신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없이 육안만 가진 사람의 기준으로밖에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정말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볼품없고 초라하다고 말하더라도 그 소리에 동요되지 않고 “무슨 소리야! 나는 하나님 앞에서 힘센 용사야!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너야말로 초라한 인생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긍지가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한다.

일어나라이찬수 | 규장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이사야 58장11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로마서 15장13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여호수아 1장9절

주님, 세상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준삼지 않게 하소서. 제가 연약할 때 주님께서는 ‘힘센 용사’로 불러주시고 능히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의 관점으로 제 마음과 생각을 고정시키겠습니다. 내 안의 두려움을 떨치고 주님과 함께 일어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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