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089 | 2014-03-05

유대인 절기로 이해하는 성경

초막절과 초막짓기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막9:5)

변화산 정상에 올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수제자 3명은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이러한 무아지경에서도 베드로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께 기가 막힌 제안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변화산 사건에 등장하는 ‘초막’과 관련된 베드로의 제안은 초막절과 관련된 독특한 표현인데, 한국 성도들이 언뜻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기도원에 갔다가 이 말씀을 인용하는 성도들을 종종 보았다. 대체로 첩첩 산중에 있는 기도원에까지 올라와 작정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 속세에 해결되지 않은 산적한 문제들을 두고 온 경우가 많다. 산속의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무아지경의 은혜를 체험하면,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문제 많은 저 산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 기도원 옆에 멋있는 ‘별장’ 하나 짓고 예수님만 벗 삼아 살고 싶은 욕구가 들 것이다.

변화산 위에서 멋진(?) 제안을 하고 있는 베드로의 마음에도 혹시 문제 많은 산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산 위에서 예수님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드로가 짓겠다고 제안한 ‘초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멋진 ‘별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초막절에 짓는 허름한 ‘임시 가건물’로서, 히브리어로 ‘수카’라고 한다. 초막절을 히브리어로 ‘수콧’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수카’를 만드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적 정서에서 ‘초막’이라고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림도 ‘초가집’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초막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초막을 짓고 광야생활을 기억한다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23:42,43)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 초막절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가정이 ‘초막’으로 불리는 임시 가건물을 집 옆에 만드느라 분주했다. 초막절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은 온통 초막을 짓는데 가 있었다. 변화산 정상에서의 무아지경에서도 갑자기 ‘초막’ 얘기를 꺼낸 베드로를 볼 때, 변화산 사건은 아마도 초막절 즈음 일어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풍경은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추석 때 모든 가정이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듯이,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대부분의 가정은 초막을 짓고 초막절의 1주일 동안 그 안에 거주한다.

부모님과 함께 초막을 짓고 초막절의 1주일 동안 초막에서 먹고 자는 것은 현대국가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분명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3천 년 전에 있었던 이스라엘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것이다. 초막을 지을 때는 누워서 초막의 지붕을 볼 때에 최소한 3개 이상의 별이 보여야 한다. 이것은 광야에서 거했던 텐트(장막)와 초막을 연결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종교적인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은 초막절에 만드는 초막을 위해서 독특한 가옥구조를 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빌라와 같은 개인주택의 경우 초막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마땅히 초막을 만들만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아파트들은 계단식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 이것은 베란다에 초막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계단식으로 된 베란다에서 초막을 만들어 누우면 초막의 지붕을 통해서 3개 이상의 별을 보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집마다 ‘창공 조망권’을 확보하는 것이다.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동시에 가장 힘들었던 광야생활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듯이, 축복의 때에 쉽게 축복 자체에 안주하며 타락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40년을 거치면서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다. 축복의 때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이 아닐까?“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초막절’만 같아라

우리나라에 구정과 추석이 있듯이, 유대인들에게는 유월절과 초막절이 있다. 구정과 추석 중 어느 것이 더 큰 명절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 곤란하듯이, 유대인들에게 유월절과 초막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명절이냐고 묻는다면 동일한 반응을 볼 수 있다.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 명절에 견줄 수 있다. 추석, 즉 한가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표현이 있듯이,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감사, 기쁨, 기대가 충만한 절기였다. 이 때는 초실절(4월경)의 보리 추수와 칠칠절(6월경)의 밀 추수로 시작되는 곡식 추수와 포도, 올리브, 종려나무 등 여름과실의 수확과 저장을 마치고 ‘추수감사제’로서 한 해의 농사 시즌을 종결하는 때이다.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유월절과 초막절이 중요했고 중간에 끼어 있는 칠칠절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 해 농사 시즌의 시작에 있는 유월절과 달리 마지막에 있는 초막절은 훨씬 더 자유롭고 들뜬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마치 대입 수능시험을 마친 수험생의 기분이랄까? 성서시대 유대인들은 두 절기 가운데 최소한 한 번은 성전을 방문해야 했다. 대부분이 농부인 성서시대의 순례자 입장에서 본다면, 보리추수기와 겹치는 유월절보다는 한 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내년 농사를 위해 새롭게 파종하는 때까지 여유로움과 한가함을 만끽할 수 있는 초막절에 성전을 방문하는 것이 훨씬 마음의 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초막절에 흔드는 4가지 식물, 아르바 미님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40)

초막을 짓는 행사와 함께 초막절이 가까워오면 이스라엘 시장에는 초막절에 흔드는 4가지 식물인 ‘아르바 미님’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초막절과 관련된 4가지 식물에 대한 유대 현인들의 해석만 정리해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풍성한데, 때로는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그럴듯한 해석들도 많다. 게중에 2가지 해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4가지 식물로서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가나안까지의 이동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의 유명한 랍비인 마이모니데스의 해석이다.

1. 종려나무: 광야생활 40년을 상징함

종려나무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개의 나무 중 하나다. 하지만 종려나무의 특징은 샘 근처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를 지날 때 멀리서 종려나무가 보이면 근처에 오아시스가 있음을 의미했다. 광야를 지나는 여행객들에게 생명을 상징하는 물과 그러한 물 근원을 제공하는 오아시스가 주는 기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장정의 숫자만 60만이 넘는 대규모의 무리를 이끌고 허허벌판의 황량한 광야로 인도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간 중간에 진을 치고 쉬어야 했는데, 아마도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 곁에 진을 쳤을 것이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15:27)

2. 버드나무: 요단강을 건넌 기적을 상징

버드나무는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무로서 반드시 시냇가 근처에서 자란다. 그래서 성경에는 항상 시냇가 또는 물가와 관련되어 버드나무가 등장한다.“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욥40:22)“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사44:4)“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겔17:5)

버드나무는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강 도하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 발을 디디게 된 사건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면서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버드나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3:17)

3. 무성한 가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상징

무성한 가지로 번역된 식물은 히브리어로 ‘하다스’라고 한다. 하다스의 특징은 무성한 잎에 있다. 유대인들에게 영생과 불멸, 더 나아가 성공과 축복을 상징하는 하다스는 요단강을 건너 들어온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4. 아름다운 나무 실과: 가나안 땅의 삶에서 맺을 열매를 상징

아름다운 나무 실과로 번역된 식물은 히브리어로 ‘에트로그’라고 한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성한 삶을 누리면서 맺게 될 열매를 가리킨다.

둘째로, 4가지 식물은 4종류의 유대인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레위기 미드라쉬에 나오는 것이다.

1. 아름다운 나무 실과: 향이 있고 맛이 있는 식물이다. 이것은 토라를 배우고 그 뜻대로 실천하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2. 종려나무: 맛은 있지만 향이 없는 식물이다. 이것은 토라를 배우지만 실천하지 않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3. 무성한 가지: 향이 있지만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것은 토라를 배우지 않고도 그 뜻대로 실천하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4. 버드나무: 맛도 없고 향도 없는 식물이다. 이것은 토라를 배우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4가지 식물의 맛과 향을 가지고 4종류의 유대인을 설명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어떤 식물에 속하는 성도인지 한 번쯤 곰곰이 돌아보는 것도 초막절의 ‘아르바 미님’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유익이 아닐까 싶다.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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