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5,805 | 2012-02-14

‘주여,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모르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을 믿지도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누릴 수 있는 복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나 임재해 계십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_시 139:7,8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도망하여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런 임재와는 구별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정도로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것은 그런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단지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없이 믿음만을 가지고 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주저 없이 기도했습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시 86:17

우리가 인격체(人格體)이고 하나님도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인격체로서의 교류가 가능합니다. 사랑과 믿음과 대화 가운데 인격체 사이의 교류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응해주시는 일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나야 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근엄하고 우울하고 차갑게 살면서 “내게는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은총의 표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표적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해야 할 경우들이 때때로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잠깐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우리가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사 54: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응해주시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압도적인 임재를 갈망하라A.W. 토저·레오나드 레이븐힐 외 2인 | 규장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출애굽기 33장 18,19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한복음 14장17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로마서 8장14절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길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에 제 마음에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늘 주님을 의식하며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며 주님과 함께 살길 원합니다. 부족한 종의 믿음에 응답하여 주시고, 임재의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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