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018 | 2012-08-09

‘아니, 어떻게 알았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위장하고 숨기려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더럽고 악한 것들을 교양과 매너와 웃음으로 절묘하게 숨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 앞에서는 그런 가식과 위장이 통하지 않는다.

공항 탐색대의 엑스레이에 걸리면 가방 안의 내용물이 다 드러나는 것과 같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의 실체를 순식간에 드러내버린다.

가끔 “목사님이 우리 집에 도청장치를 해놓으신 게 아닌가? 아니면 집사람이 목사님에게 일러바친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교가 족집게처럼 내 상황과 꼭 맞을 수 있는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건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찌르신 것이다. 어떨 때는 말씀이 내 사업관을 찌르고, 내 가정생활을 찌른다. 또 어떨 때는 내 안에 있는 분노와 음란과 질투심을 찔러 드러나게 한다.

우리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그때 가장 수술이 필요한 부분을 성령님이 말씀으로 찌르신다. 영혼의 정곡을 찔렸기 때문에 뜨끔하다. 정신이 번쩍 난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나를 찌르신 까닭은 내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반응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일까? 그것은 바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이 보인 반응이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_행 2:37

말씀은 평가하는 게 아니고 반응하는 것이다. “야, 참 좋은 설교네”라고 한다면 설교를 잘못 들은 것이다. 진짜 제대로 된 말씀의 검으로 찔리면 영혼에서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탄식이 난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의 비참함과 그 바닥이 드러났을 때 터뜨리는 탄식이다. 자신들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이 순간이 소망의 시작이다.

진짜 성령의 역사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부활이다. 내가 완전히 죽는 경험이다. 말씀의 검으로 문제는 환히 드러났지만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해결을 못하겠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개헤엄이라도 칠 줄 안다고 우기면 평생 제대로 된 수영을 못 배운다. 내 안에 어쭙잖은 자존심이 다 죽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가정과 직장과 미래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절망을 선포해야 그때부터 성령님이 내 인생을 살려주신다. 반드시 그 절망을 통과하게 하신다.

지금은 성령시대한홍 | 규장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히브리서 4장 12,13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장 26절

주님, 말씀의 검으로 제 영혼의 병든 자아를 찔러 깨우쳐 주옵소서. 제 안에는 아직도 어쭙잖은 자존심, 내려놓지 못한 욕심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절망의 눈으로 주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주님, 구원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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