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8,566 | 2014-03-05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8:11)

“예수께서는 사법관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중재를 거절하셨다.” 이것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께서 책망하시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것 중 한가지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문자적으로 고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은 그 분의 잘못을 발견하려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의 대답은 그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여인만 남게 되자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8:5-11).

할라카 (유대인 율법)의 대부분의 질문처럼 이것은 판결에 관한 문제이다 - 예를 들면, 법의 위반과 이에 따른 처벌은 군중이 아니라 전적으로 법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은 성경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원칙에 따라 이 여인을 처벌하시지 않기로 하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 우리는 율법이 간음한 여성들에 대해서 기혼 여성과 약혼한 처녀 (신22:22-24)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경우에 대한 판결은 교수형이고, 두 번째 경우의 판결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다 (산헤드린50a).

예수님 앞으로 끌려온 이 여인은 분명 약혼한 처녀였다. 두 가지 범죄 중 이 경우는 좀더 엄격했기 때문에 예수의 대답은 더욱 결정적인 것이었다. 사형 선고를 요구하는 율법은 명백한 것이었지만, 예수께서는 이 여성을 처벌하시지 않으셨고, 따라서 예수의 주장은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관대함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엄격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구약에는 범죄를 회개하면 처벌을 면한다고 언급한 곳이 없고, 무자비한 정의의 추구는 복수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어느 누구도 결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판결은 당시 최고 법원이었던 산헤드린의 견해와 유사한 것이었다.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실제로 가능한 한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7년에 한 번 집행을 승인하는 산헤드린은 파괴주의적인 법정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더 나아가서] 랍비 엘리에젤 벤 아자리아는 말했다: ‘70년에 한번씩으로’” (마콧7a).

계명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관대한 접근은 사실 율법의 전체적인 전제를 한층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잠3:17). 따라서 정의는 평화 없이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사59:8). 따라서 예수의 판결은 랍비 유다 벤코라가 표현한 것처럼 산헤드린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엄격한 정의가 있는 곳에는 평강이 없으며, 평강이 있는 곳에는 엄격한 정의가 없다” (산헤드린6b).

평강과 엄격한 정의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왔다.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사고를 탐탁치 않게 여긴 랍비 코라는 법적인 절충안이 이것들을 조화시키는데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원칙은 다윗 왕이 실행했었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자비]를 행할새” (삼하8:15). 엄격한 정의는 모든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고, 고삐 풀린 자비는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다윗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함정에 걸리기를 원했던 -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엄격한 정의의 요구라는 - 문자적 접근은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평화가 없는 잔혹한 사회로 이끄는 것이다.

Picture - 정의 대 자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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