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3,929 | 2012-08-14

“저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요!”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정말 믿으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야 그 사람이 진짜 믿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선행을 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믿었으니까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죽은 믿음’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아는 것은 믿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행위로 압니다.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로 행위 구원이 아닙니다. 선행을 많이 해야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믿으니까 믿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아들 둘을 죽인 원수와 같은 자를 양아들로 삼으신 분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따님인 손동희 권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 중학생 때 아버지가 그 사람을 양자 삼겠다고 할 때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답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별나게 믿어야 되나요? 그 사람이 이제 내 오빠가 된다는 말입니까? 나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때 손양원 목사님이 울면서 말도 안 된다고 하는 딸을 설득하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일제시대 5년간이나 가족을 고생시켜가며 감옥생활을 견딘 것도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으려고 한 일이었다. 동희야, 제1계명, 제2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어느 것은 순종하면서 어느 것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겠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과거 5년 동안 감옥생활 한 것이 모두 다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이 되는 것이니 나는 여기서 넘어질 수가 없구나. 두 오빠는 천국 갔으나 그를 죽인 자는 지옥 갈 게 분명한데 전도하는 목사로서 그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으란 말이냐.”

손양원 목사님이 가졌던 이 마음이 비정상적입니까? 그렇지 않죠. 주님의 십자가를 진짜 알고 믿는다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_요 13:34,35

예수 믿는 것을 사랑으로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 판정한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정말 원수도 사랑할 그 사랑이 가슴에 절절하지 않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며 나에게 영생을 주기 위한 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쉽게 넘어갈 문제이겠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믿음이 내게 있는지 돌아볼 문제입니다.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면 이 문제를 절대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책 + MP3 CD)유기성 | 규장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요한일서 3장 14,15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히브리서 12장 14절

주님, 입술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원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믿음이 내 삶에 실제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을 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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