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5,157 | 2012-08-21

비워내지 않는 한, 충만해질 수 없다!

산상수훈의 첫 번째 축복에 대해 생각해보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것에 대한 축복이 팔복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까닭이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특질들을 체험하기에 앞서 그것을 가장 먼저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뒤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특질들을 낳을 수 있는 유일한 토양으로서 그것들 각각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것들 각각의 밑바탕이 된다.

그 누구도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없고 그렇게 애통하는 가운데 자신을 겸손한 눈으로 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온유하게 대할 수 없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 자신이 빼어나다고 생각하여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 자신의 영적인 부족함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준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너무나도 받기 어려운 은혜가 된다.

그렇다. 심령의 가난함은 축복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턱이요 현관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제 집의 터를 단단히 닦은 뒤에야 비로소 제 집의 벽을 건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심령의 가난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 그것보다 더 높고 귀한 성품의 특질을 보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자아’를 완전히 비워내지 않는 한,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생각을 버려야만, 다시 말해 ‘의’義의 옷이라고 여기고 입고 다니지만 실상 불의不義의 옷인 그 옷을 벗어버려야만 비로소 하늘로부터 오는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다.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는 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결코 귀한 분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만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반면 진실한 겸손은 우리가 눈을 뜰 수 있게 해준다. 누구든지 진실한 겸손으로 눈을 뜨지 않으면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이들은 복이 있다! 자신이 영적으로 곤궁하고 빈곤하고 비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 이들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외면적인 신앙은 인간의 눈에 가장 높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심령의 가난함은 가장 낮은 형태의 영적인 은혜일지라도 천국을 축복으로 받는다.

당신이 지금 그저 심령이 가난할 뿐 그 이상의 특질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로 인해 답답함만 느껴진다고 해도, 당신은 복이 있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당신을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축복한다C. H. 스펄전 | 규장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요한계시록 3장17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야고보서 4장6절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 시편 138장6절

주님,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부유함을 경험하게 하소서. 선한 것 하나 없는 상한 심령을 돌보시어 주의 은혜로 치유하여 주시고, 그 사랑과 충만함으로 살길 원합니다. 주님, 오늘도 충만한 주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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