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1,338 | 2012-10-10

제 안에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사람이 태어나는 일을 ‘탄생’(誕生)이라 한다면 사람을 낳는 일은 출산(出産) 혹은 분만이라 한다. 하나님이 여성에게만 명하신 생명 탄생의 신비한 법칙이자 과정이다. 대개 의학적 안전을 이유로, 현대 한국 임산부(姙産婦)의 99퍼센트는 병원(산부인과)에서 이 과정을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1퍼센트는? 집에서 출산한다는 말인데, ‘과연 1퍼센트나 될까?’ 싶을 정도로 요즘은 그런 경우가 드문 것 같다. 그래서인지 2010년과 2011년, 연년생 딸 예나와 아들 학준을 모두 집에서 낳은 탤런트 김세아의 경우는, 그녀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이제는 특별해진 출산 방법만으로도 충분히 세간의 화제가 될 법 하였다.

김세아는 첼리스트인 남편(김규식)과 함께 의료진(가정출산 전문의)의 최소한의 관리 가운데 집에서 아기를 낳는 과정을 방송에 소개하기도 했고, 《김세아의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책으로도 그 출산 경험을 공개하였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산부인과에서는 ‘분만’(deliver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집에서 낳을 땐 ‘탄생’(birth)이라는 말을 쓴다. ‘분만’은 산모를 환자로 보고 있다는 뜻이고, ‘탄생’은 산모를 엄마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김세아의 자연주의 출산》 64쪽 중에서).
어찌하든 엄마는 되는 일일 터이나, 평소처럼 익숙하고 좀더 편안한 환경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환영하는 일이 ‘자연주의 출산’이라면, 특별히 출산을 앞둔 젊은 크리스천 부부들에게 그녀의 ‘자연주의 출산’에 담긴 이유를 들려줄 만하겠다.

그녀는 대학생이던 1996년, 6000대 1의 공개 오디션 경쟁을 뚫고 MBC 탤런트로 선발됐고 그해 방영된 드라마 ‘사랑한다면’에서 심은하의 동생 역으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그러나 초기의 부진 이후 상당 기간을 ‘광야학교’에 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김세아는 결혼과 그 특별한 출산의 시기와 맞물려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났고, 연예계의 크리스천들이 연합으로 모이는 성경공부를 통해 믿음의 변화와 성숙을 경험해오고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출산 후에도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비결은 역시 운동이겠지요?
네, 전공이 리듬체조인데요, 요즘에는 스트레칭과 필라테스 같은 운동으로 몸매를 유지하는 ‘바디아트’를 널리 알리고 있어요. 필라테스 강사이기도 하고요. 참, 손연재가 제 후배잖아요! 연재가 아직 대학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틀림없이 제가 나온 세종대학교에 올 겁니다. 제 은사이기도 하신 이덕분 교수(전 체조 국가대표)님이 가만 두실 리가 없거든요. 저도 중학생 때부터 체조를 했으니 어쨌든 연재 선배입니다만.

방송에서 재즈댄스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보인 적도 있는데, 체조를 했었군요.
원래는 무용을 먼저 배웠어요. 초등학생 때 무용 선생님이 저를 보시고 무용을 적극 권하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안 한다고 그랬어요.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그림 그리기나 하지 운동 신경은 전혀 없는 아이였거든요. 오른팔 들라면 왼팔 들고, 뒤로 돌아 그러면 아이 얼굴이나 보고 있고. 그래도 엄마나 선생님이 권해서 방과 후에 하긴 했는데, 발레 배우는 게 너무 피곤하고 버거운 거예요. 그래서 도망 다니기도 했는데, 다니던 학교가 학생 수가 많아지고 동네가 커지니까 분교를 하게 되면서(무용은 잠시 멀어지게 되고)….

그러다 근방의 중학교에 가게 되는데, 그 학교 선생님이 리듬체조 국제심판일 정도로 리듬체조로 유명했어요. 학교 가니까 아이들이 복도에서 다리 ‘찢고’ 있고, 다들 리듬체조부에 들어가는 게 로망인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리듬체조부에 간다는 소문이 나더라고요. 2,3학년 언니들이 교실을 찾아와 “여기 김세아가 누구니?” 묻기도 하고.

그래서 ‘이걸 해야 하는가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오히려 엄마가 말려요. “얘가 어려서부터 무용이나 피아노나 끈기가 없어 끝까지 하는 게 없었고 지금 몸도 약하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오기로 “아냐, 엄마! 나 이거 할래!”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 날 보니 선수로 뛰고 있더라고요. 한 8,9년 선수 생활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할 만큼 한 거죠. 리듬체조는 잘해야 20대 초반을 못 넘기거든요.

그리고 탤런트 공개 오디션에 나가게 됩니다.
잠깐 휴학을 하고 마침 친척이 계시는 뉴욕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재즈댄스를 배웠고. 리듬체조 선수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까 우물 안 개구리 같아 아빠에게 제발 유학 좀 보내달라고 했지만, 아빠가 좀 고지식하셔서 “허파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 유학이야! 빨리 졸업하고 결혼해!” 하시는 거예요. 고등학생 때 일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그것도 반대하셨고. 그래서 뉴욕에 갔다가 ‘나중에 대학원은 여기 발레아트스쿨로 와야지’ 생각했어요. 탭댄스, 재즈댄스, 발레까지 배우는 무용학교였거든요.

그리고 1년 후 돌아왔는데, 그때는 좀 특이했던 게 제가 다니던 세종대학교에서 2년에 한 번 정도 무용발표회 하는 걸 KBS에서 녹화해 방송을 하곤 했어요. 당시 저를 가르치던 강사 중에 MBC 안무가가 계셨는데, 공연을 위해 재즈댄스를 지도하시다 MBC 신인 탤런트 공개 오디션을 알려주셨어요. 절더러 나가보라고. 이번에도 아버지가 “허파에 바람” 하시며 반대하셔서 “전 안 해요” 했더니 “선생님이 하라면 무조건 해야지! 네가 뭐 꼭 될 거 같아서 그런 줄 아니?” 하셔서 지원했지요. 갔더니, 6000명이나 온 거예요.

그 6000명 가운데 최종 선발이 됩니다. 당시 동기가 누구였죠?
김정은, 강성연, 홍석천, 그리고 지금은 이 땅에 없는 안재환…. 방송으로 나온 공개 오디션 채용이라 당시로선 화제였죠. 대상은 물론 인터넷 투표에서 인기상을 받으니, 하루아침에 다른 세상이 됐죠. 몇 달 지나지 않아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오라기에 갔더니 단번에 뽑힌 거예요. 작가들이 저를 지목했다고 해요. 전 연기의 연자도 모를 때였는데…. 아니나 달라요? 카메라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제 발음도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고, 당시는 연기자가 발음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거든요. 제 서구적인 외모가 아직 어울리지 않을 때이기도 했고요. 제작진을 무척 힘들게 했죠. 그 뒤로 한 4,5년,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게 됐어요.

어떻게 어려웠습니까?
일도 없었지만, 소속사도 잘못 만난 거예요. MBC 계약 끝나고 만난 소속사 대표가 고 장자연 씨 매니저였거든요. 세상에 가장 안 좋고 못 볼 것들을 제 눈으로 다 본 거예요. 어떤 선배가 어떤 분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 후배로서 불려나가는 거죠. 선배가 우아하게 “잘 부탁합니다” 인사하고 나가고 나면, 저 같은 사람은 그때부터….

그런데 전 고지식한 아버지에게 배운 탓도 있어서, 마치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핸드백도 버려두고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어요. 다음날 난리가 났죠. 로드매니저에게 부탁해 핸드백 돌려받고 “오빠, 고마워” 그러니까 “아니야,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지” 하더니 며칠 뒤에 그만 두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버티지를 못했던 거예요.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저는 피하기만 하니까 3개월을 쉬라고 해요. 다시 불러서 “너 어디 방송국 가봐. 오디션 있대” 해서 가보니까 “어? 벌써 끝났는데” 그러는 거예요. 속된 말로 물 먹이는 거였죠. 나오고 싶어도 위약금이 몇 억이라며 나올 수도 없게 만들고…. 새장 안의 새처럼… 갇혀서 울기만 했어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간구하고 1년 정도 지났을 거예요. 결국, 하나님이 구해주셨어요!

어떤 기적이 일어났나요?
엄마가 보다 못해 저를 내보내달라고 말하려 오셨는데, 조폭 같은 사람이 위약금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는 상황에서도, 참 엄마가 대단했죠.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사실은 그때 저희 엄마가 정말 기도 많이 하셨어요. 여하튼 그런 상황에서 어떤 다른 사장님이 마침 그 자리에 있다가 저를 무척 불쌍하게 보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분이 어떤 신문사의 사장으로 가게 되면서 연예기획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를 자연스레 그쪽으로 옮겨가도록 하신 거예요. 그후 ‘명성황후’에 출연하고 시트콤과 CF도 찍고 영화 ‘쇼쇼쇼’에도 출연하게 되고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어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 대목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궁금하군요.
저희 집은 굉장한 불교였고요, 저 어릴 때 엄마는 아줌마들하고 점집 찾아다니고, 절에 가서 제사 지낼 때 저는 절간에서 잠자리 쫓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집에 어떤 할머니가 날마다 오셔서 “세아 엄마, 교회 가자”고 전도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9살인가 10살 무렵엔가, 엄마가 뜨거워지신 거예요.

부흥회 가서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엄마랑 같이 성령 받고 방언도 따라서 받고, 감기 걸리면 엄마가 기도해주는데 남동생은 잘 낫지 않아도 저는 금세 낫곤 했어요.
어렸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걸 믿었어요. 그리고 리듬체조 하기 전까지는 성가대 봉사도 열심히 했어요. 가정예배 드릴 때마다 말씀 암송 시키셨고, 항상 겸손하라고, 남의 마음에 상처 주면 안 된다는 엄마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실수도 있었겠지요?
그렇지요. 2007년, 그때 일은 정말 하나님이 저를 돌이키시려고 일부러 치신 것 같아요. 그건 정말 완벽한 범죄였거든요.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와인 2잔을 마셨어요. 그런데 인근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연락이 와서, 정신도 말짱하고 거리도 가깝고 해서 운전을 했는데, 음주단속에 걸린 거예요.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준치 이상이라 100일쯤 면허 취소가 되었어요. 마침 뉴스 전문 방송 기자가 근처에 있어서 저를 찍고 있었고, 핸드폰 배터리는 방전이 되어 어디 연락할 수도 없었고, 저를 완전히 막으신 거였어요.

‘재수 없는 일’이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도덕적으로 분명 잘못한 일이었고, 뒤돌아서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금 이렇게 쓰시려고, 이렇게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러신 일이었어요. 제 인생에서 또 다른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어요. 어려서 졸지에 탤런트가 되고 바빠지고 재미있는 일이 많아지니까 말씀이 옆에 있어도 제 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많이 회개했지요.

주님께로 돌아오는 데, 주변 연예인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난을 겪으며 ‘내가 정말 하나님 안에 있어야지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던 참에, 하루는 20대부터 친하게 지내던 추상미 언니가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결혼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만났는데, 결혼 이야기는 조금만 하고 온누리교회에서 모이는 기독 연예인 공동체 이야기만 잔뜩 하는 거예요. 그래서 김여호수아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모임에서 김효진, 전혜진, 박나림, 박탐희 같은 이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그 후로 이상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다 크리스천들뿐인 거예요.

그리고 이성미 집사님이 돌아오셔서 연예인연합예배를 섬기시면서 그 안에서 은혜를 받고 김용의 선교사님 복음집회도 참석하고, 그러면서 제가 다시 하나님 안으로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연예인 성경공부 때 마커스의 김남국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제게 큰 공감이 되었는데요, 우리 신앙의 성장 그래프가 대개 일직선은 아니라는 거예요. 마치 동그라미 스프링이 나선형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결국 올라가는 것처럼, 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저도 지금 그렇게 올라가려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제게 역사하시는 것이죠.

남편이 크로스오버 음악계에선 꽤 알려진 첼리스트이시더군요.
원래 제 이상형은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네요. 지금 저희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는 김여호수아 목사님이 개척하신 서울드림교회인데요, 원래 무늬만 가톨릭이던 남편이 저랑 결혼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시댁은 가톨릭 순교자의 후손이거든요.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도움도 있었겠습니다.
남편 도움 없인 못하죠. 저보다 남편이 더 적극적이었어요. 제가 언젠가 미국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정 출산 장면을 보고 도전을 받아 결심하게 된 일인데요, 친정엄마도 적극 반대하시고 저도 포기하려 했을 때 남편이 용기를 주었고, 출산 과정에서도 계속 제 등을 위아래로 마사지해주어 호흡을 도와줬지요.

‘자연주의 출산’을 권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아기 목에 탯줄이 감긴다든지 하는 아주 위험한 경우를 빼면 웬만하면 다 자연적인 힘으로 낳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으셨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출산이 1퍼센트 미만이라는데,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30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집에서 한다 뿐이지 사실은 전문의의 사전 진단과 조언을 받고 하는 일이라 위험하지도 않고요, 만일을 대비해 집안에 의료장비를 갖춰놓습니다. 저도 출산교실에서 알게 된 가정출산 전문의의 도움을 받았고요, 비용도 병원에 비해 부담스러운 수준도 아니고요.

자연주의 출산이란 진통제나 촉진제 같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호흡법과 욕조에 의존하며 최대한 견뎌내는 거예요. 제가 첫째 예나를 출산할 때, 진통 7시간째에 진통제를 요구했는데, 그 순간을 견디고 네 시간 지나 출산할 수 있었거든요. 병원에서라면 기다려주지 않았을 거예요. 둘째 학준이는 10시간이 걸렸네요. 하나님이 항상 제 안에 함께 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자연주의 출산으로 태어난 예나, 학준이는 잘 울지도 않고요, 늘 방실방실,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지금은 나눔의 삶을 살고 계시죠.
지난 8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해서 희귀심장병으로 생후 3개월 만에 입원한 소원이네를 알게 됐어요. 우리는 그런 분들에게 단돈 만 원을 드리는 게 무슨 큰 힘이 되겠느냐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해요.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소원이네를 알렸어요. 일단 드려보라고. 사랑은 마음을 주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지갑을 여는 거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잠깐이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기도해줄 수 있잖아요.

저는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면 돈 만 원이라도 쥐어드려요. 그러면 너무 행복한 얼굴로 변하시거든요. 그게 행복이 아닐까, 저는 생각해요. 제가 주님께 받은 사랑과 관심, 그걸 돌려드리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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