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5,586 | 2012-10-24

“이제야 니놈들이 내 말을 알아듣는군”



주일 새벽,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 술이 잔뜩 취한 노숙인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나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몹시 화가 난 그는 “내 머리 하나에 끼니당 5천원을 받았으면 고기반찬에 잘 차려 먹여줘야지 왜 돈을 다 떼어먹고 개밥을 주냐”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 노숙인을 만류할수록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져서 한 시간 이상을 나만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소중한 사람들’은 7년째 서울역에서 오전 5시 30분부터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새벽 1시부터 800~1000명의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김치를 준비한다.

노숙인들과의 약속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7년을 한결같이 현장을 지켰다. 나는 7년 전에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주님께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노숙인들과 만나는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영혼을 품어주지 않겠니?
‘소중한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곳곳에서 봉사자들도 모여들자 사람들은 나에게 험한 현장에 나오지 말 것을 권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있어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는 현장에 변함없이 서 있었다. 몸이 아플 때면 자동차 안에서 끙끙 앓고 있을지언정 말이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그들이 더욱 쓸쓸하고 배고픈 날이기에 명절에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노숙인들과 7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애환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기뻤고 행복했다.

그 노숙인의 침이 내 얼굴에 튀면서 사납고 무례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욕설을 뱉어내고, 근거도 없이 억울하게 매도를 당한 그 날 새벽, 센터로 돌아와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이젠 노숙인들에게 밥 주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우리가 처음 노숙인 급식을 시작했던 7년 전에는 밥 주는 곳이 없어서 노숙인들이 배고픈 고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마다 단체마다 마치 경쟁하듯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곳이 많아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그 때 돌같이 단단한 내 마음을 주님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그래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곳은 지금도 많고 앞으로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영혼을 가슴에 안고 애통하며 고민하며 수고하겠느냐”

밥이 아닌 생명을 맡기신 주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밥에 정신이 팔려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셨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이 내 손에 맡긴 것은 밥이 아니라 생명이었던 것이다.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생명을 얻는 것에 목표를 두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주님! 다시 시작하겠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의 생명을 얻으라고 주님이 나에게 친히 보낸 사람임을 명심하겠습니다.”

그 이튿날인 월요일 새벽, 마침 신림동 동산교회 청년부 목사로 일하고 있는 큰 아들이 몇 명의 교회 청년과 함께 봉사하러 서울역에 나왔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만취한 그 노숙인이 저쪽에서 나타났다.

나를 보더니 쏜살같이 달려와 때리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위협을 준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아들이 반사적으로 자기 몸을 날려 나를 방어했다.
“아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내가 오늘 저 사람의 말을 주님의 말씀으로 들을 거야.”

내가 의연히 그 사람을 맞으니 아들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 뒤로 물러섰다.
“야! 너 내 머리 하나에 얼마가 걸려 있는 줄 아냐? 너 나 때문에 먹고 살잖아. 우리가 밥 먹으러 들어 갈 때마다 짤칵 짤칵 머리수가 계산되는 것 다 알아. 그런데 그 돈 다 어디다 떼어 먹고 음식을 이따위로 만들어 오는 거야.”

나는 어제 이 말이 너무 억울했고 기가 막혔다. ‘누가 당신을 위해 돈을 지원한단 말인가? 누구든지 당신네들과는 마주 서서 이야기조차 하기 싫어하는 상대인 것도 모르고….’ 오늘은 그의 말이 다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맞아요! 주님이 넘치도록 공급하시고 후원해주셨어요’라고 했다. 내가 자신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그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이제야 네 년이 내 말을 알아듣는군. 우리 고기반찬 해줘! 콩나물과 김치국은 지겨워.”
“예. 고기반찬을 해드릴게요.”
“네 가족들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성껏 해와!”
“예!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던 그 사람이 양처럼 순해졌다.

주님! 저 영혼을 내 손에 맡겨주세요
그 날 이후로 ‘소중한 사람들’은 한 번도 고기가 빠지지 않는 네 가지 이상의 반찬과 국으로 노숙인들에게 나눌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힘들어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모습은 나에게 더없는 행복을 준다.오늘도 그 노숙인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많은 고기를 사서 수백 명에게 먹이다가 아줌마 거덜 나면 어쩌지? 내가 아줌마 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줄게.”
그들의 소리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소리로 듣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님이 부탁하는 소리로 들을 수 있으면 그들과 똑같아질 수 있다.

나는 주님이 아무리 놀라운 변장을 해도 잘 찾아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변장하고 올 것인지를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 기본적인 변장술을 지나 더 난해한 변장을 알아내야 한다. 내 뺨을 치는 자, 무례하고 험악한 자, 나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 후욕하는 자, 능욕하는 자, 핍박하는 자, 나와 원수된 자, 누구든지 나에게 관계된 사람은 주님이 그에게 생명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주님은 한 영혼을 위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도 아낌없이 투자하시고 공급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유정옥 서울역 노숙인을 섬기는 소중한 사람들 회장, 인천 인일여고와 총신대학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유정옥 | 크리스챤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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