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2,112 | 2012-12-19

가슴에 선명한 수감번호 B72067


“유정옥 사모님이시지요? 제가 사모님께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를 만나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지요. 만나겠어요.”

너무 쉬운 내 대답이 그녀를 거슬리게 했는지 나무라듯 왜 그렇게 쉽게 승낙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당황한 나는 “저…성경에 주님께서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녀는 의외라는 듯 내 단순한 대답에 머리를 흔들며 “그런데 사모님! 그 죄수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시카고에 수감되어 있어요. 그를 만나기 위해 사모님이 미국으로 가셔야 하고, 비행기 표와 그곳에 머무르는 경비도 다 부담하셔야 해요. 그런데도 그를 만나 주시겠어요.”
“주님께서 그와의 만남을 기뻐하신다면 모든 어려움을 도와주실 거예요.”

우리 아들 앤드류는요
그녀는 한 달 후인 3월 29일 인천공항에서 5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그녀와 약속한 시간의 비행기 표를 사고 3월 29일 이후의 스케줄을 그 죄수를 위해 다 비웠다. 한 달 후 인천공항에 나가보니, 그녀가 먼저 나와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모님! 역시 나오셨군요. 사모님이 저와의 약속을 거절할까봐 무서워서 그동안 전화도 못했어요. 내가 사모님이라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부탁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 유명한 화가였다. 그녀는 돈이 가득 들어있는 하얀 봉투를 비행기 값이라고 나에게 내밀었다.

“저는 그레이스교회의 선한사마리아선교회에서 봉사를 했어요. 선교회에서는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 중 몇 년이 지나도 면회 오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죄수를 만나주는 일을 해요. 그 봉사를 나갔다가 앤드류를 만나게 됐어요. 앤드류는 19살에 누나의 애인을 살해한 죄로, 80년의 형량을 받고 수감 중인 죄수입니다.

형무소에 들어간 후 뜨겁게 주님을 영접하고 모범수로 살고 있어요. 앤드류가 19살 어린 나이에 초범이고 6년 전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누나의 애인임을 알고 그를 죽였다고 해요.

앤드류가 다른 죄수에 비해 너무 많은 형량을 받은 것을 이상히 여겨 조사하던 중에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냈어요. 그래서 사마리아선교회원들과 함께 10년째 앤드류 구명 운동을 하고 있었지요.

앤드류가 다시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앤드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알리는 방법을 택했어요.

저희는 오직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작가를 찾기 위해 기도하던 중에 사모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사모님이 비행기 표를 사고, 경비도 준비해야 한다고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어줄게
아직 꽃샘추위가 차가운 시카고는 매섭고 강한 바람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55번 하이웨이를 지나 데스플레인강과 캔커키강을 지나 얼마나 갔을까? 멀리 교도소 감시 전망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교도관의 치밀한 몸수색이 끝나자 면회 허가증을 받아 철장 문을 지나 팔에 형광 지문을 받은 후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림이 계속됐다. 앤드류를 만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몸수색을 했다. 교도관은 내 옷의 솔기까지 살필 정도로 세밀했다.
앤드류가 면회실 줄이 그어져 있는 곳에 서 있었다.

가슴에 선명한 수감번호 B72067, 앤드류의 다른 이름이 보였다. 운동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스타트 라인처럼 앤드류의 발은 그 선을 꼭 지키고 있었다. 13년의 모진 세월이 그대로 멈춘 듯 앤드류는 소년의 맑은 눈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꺼운 유리로 가로막힌 저편과 이편으로 갈라 앉았다. 앤드류는 “사모님! 저에게 무엇이든 질문하세요. 오늘 한 번의 만남으로 글을 쓰려면 얼마나 어려움이 많겠어요.제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사모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 고민하면서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앤드류야! 나는 너에게 질문하러 온 것이 아니야.나는 너를 고스란히 느끼러 왔어.너의 사랑, 너의 미움, 너의 절망과 분노,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너의 모든 것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바닥을 유리창에 대었다. 그 순간 앤드류의 가슴에 13년 동안 담겨 있던 눈물이 내 눈을 타고 흘러 내렸다. 울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앤드류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아! 나는 너를 느끼고 있다. 너의 지난 13년의 고통과 네가 앞으로 맞이할 수십 년이라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전부 밀려오고 있어. 그러나 주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을 믿는다. 나도 너와 함께 있을게.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어줄게.’

나는 가슴속으로 소리 없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유리창에 댄 내 손바닥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앤드류의 손이 유리 저 편에서 내 손에 포개졌다. 오랫동안 말없이 울기만 하던 앤드류가 입을 떼었다.

“어머니!”
그 한마디는 앤드류와 나에게 앞으로 아무 말도 필요치 않은 절대적인 사랑이 되었다.
내가 음식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내 아들 앤드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유정옥 서울역 노숙인을 섬기는 소중한 사람들 회장, 인천 인일여고와 총신대학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www.sojoonghan.org
이메일 agape6695@hanmail.net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유정옥 | 크리스챤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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