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5,166 | 2013-02-13

그에게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지려 했던 나…



◈예준이의 돌잔치

겨레의 명절인 설날이 지나갔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노숙자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 해 설날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노숙자들이 맛있는 떡국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하고 며칠 전부터 조바심이 났다.

‘주님! 이번 설날에는 노숙인들도 떡국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이것은 그저 나만의 마음의 바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도 그들에게 가족과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설날을 주고 싶으셨나보다.

이틀 전 전화가 왔다. 어떤 할머니가 손자의 돌잔치가 마침 설날이라면서 주님이 기뻐하는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자인 예준이의 돌잔치를 집에서 하지 않고 잔치 비용을 노숙자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예준이의 돌잔치는 수많은 노숙자들에게 명절을 느끼게 해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떡국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른 새벽, 우리를 기다리는 노숙자들이 이제는 너무 친근하고 혹시 늦게까지 안 오는 사람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급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노숙자들과 우리들은 한 마음 한 식구가 되어서 예배를 드린다.

비록 길거리에서 드려지는 예배이지만 찬양과 말씀이 선포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진다.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눈물이 난다.

우리는 부모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떡국을 준비했다. 그랬더니 예배를 마치고 떡국 한 그릇씩을 받아 든 그들이 연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떡국은 난생 처음이야!”

어떤 이는 떡국을 앞에 놓고 한 입 먹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했다. 수염에 콧물이 얼어붙은 채로 이가 다 빠진 채로 우리를 쳐다보며 최고로 맛있다고 칭찬하며 웃어준다. 그들을 보면 나는 너무 행복해서 어린아이가 된다.

◈주께 하듯 노숙자를 섬기겠습니다
눈에 띄던 노숙자가 보이지 않을 때,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하나는 노숙자의 삶을 청산하고 그리운 가정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좋은 생각과 다른 하나는 몸이 아프거나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노숙자 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1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키가 작았던 그는 민첩한 움직임이 마치 원숭이와 같았다.

차에 가득 싣고 간 물건들은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옮겨진다. 그가 휙휙 지나다닐 때마다 휴지통이 비워지고, 이리저리 뒹굴던 박스들이 치워졌다. 더럽고 너절하던 서울역 지하도는 깨끗하게 정돈됐다.

그는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면 밥도 먹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했다.그에게는 궂은 일, 힘든 일이 따로 없다.밥 한 그릇을 감추어 놓고 일하다가 그 밥을 빼앗기는 일이 흔했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시간에 늦게 와서 밥을 미처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다보니 자기 먹을 밥까지 다 주게 된 것이다.

하루는 청소를 부지런히 마친 그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사모님! 나 눈이 아파서 안과에 가야 해요. 보라매병원인데 영등포에 있어요.”
눈이 아프다고 하기에 그의 눈을 자세히 보니 노랗게 고름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아픈 눈을 비비던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자꾸 자기 얼굴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손이 닿지 않도록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건성으로 대답만 했다.

그는 세 번을 연거푸 그렇게 호소했으나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려 했다. 조금 있으려니까 목사님이 물건을 차에 싣기 위해 지하도에서 올라 오셨다.

그러자 목사님에게 다가간 그는 조금 전에 나에게 한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다. 목사님은 조금의 거리낌없이 그의 눈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동안 노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다루기가 힘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 나는 여자이고, 그들은 험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통솔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나는 그들과 섞일 수 없다고 간격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 저것이 바로 몇 년째 노숙자 사역을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구나. 진정으로 저들을 긍휼히 여기는 심정이 목사님에게 가득했구나. 저 모습이 나와 다른 점이야….’

그에게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지려 했던 나의 발걸음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 사람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유정옥 서울역 노숙인을 섬기는 소중한 사람들 회장, 인천 인일여고와 총신대학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www.sojoonghan.org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유정옥 | 크리스챤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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