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329 | 2014-03-05

겉옷과 사회적 권위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8)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탄생한 초대교회가 배출한 최초의 순교자는 12사도들이 아니라 7명의 행정 집사 중 하나인 스테반이었다.“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6:5,6)

사도행전 7장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행한 스테반의 설교와 이로 인해 야기된 그의 죽음을 다루고, 8장부터는 갑자기 등장하는 핍박자 사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7장 끝부분에 나오는 사울의 모습에 주목하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울이 스테반을 돌로 직접 쳐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명 그 범죄 현장에 공모자 내지는 방관자로 있었다.

그렇다면 사울은 스테반의 순교(살인)와 관련된 형사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스테반을 성 밖으로 끌어낸 무리들은 돌로 치기에 앞서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사울의 발 밑에 두었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남의 발 밑에 둔다’는 행위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할 때, 스테반의 순교와 관련해서 사울이 단순한 구경꾼 내지 방관자였는지, 아니면 적극적 가담자 내지는 주동자였는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겉옷, 사회적 권위의 상징

한 벌뿐인 겉옷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왕은 왕으로서의 권위가, 선지자는 선지자로서의 권위가, 왕자는 왕자로서의 권위가 자신의 겉옷 한 벌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러한 겉옷을 남에게 줌으로써 권위가 상대방에게 전가될 수 있었고, 겉옷을 갈아입는 예식을 통해 새로운 권위가 주어지기도 했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소년이 자라서 성인으로 데뷔하는 성인식이 행해졌다. 그 날은 3월 17일이었는데, 소년 시절 입던 겉옷을 벗고 성인의 겉옷으로 갈아입는 예식에서 분위기가 절정에 달아올랐다. 겉옷을 갈아입음으로 새로운 신분과 권위가 주어지던 로마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신분이 주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변화를 새로운 겉옷을 입은 것으로 종종 묘사하고 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9,10)

겉옷을 보고 선지자 사무엘을 알아본 사울

선지자 사무엘은 영적으로 둔감한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으면서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던 영적 암흑시대에 활동했다. 사무엘의 탄생은 한나라고 불리는 불임여성의 서원기도를 그 배경으로 한다. 한나는 기도응답으로 태어난 사무엘을 하나님의 집이 있는 실로의 성막에 바쳤다. 그리고 매년제를 위해 실로에 올라올 때마다 겉옷을 지어다 주었다.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삼상2:19)

사무엘은 선지자로 사역하는 동안 늘 어머니가 지어준 겉옷을 입고 다녔는데, 이 겉옷의 모양만으로도 백성들은 사무엘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사무엘이 죽고 블레셋과의 전면전을 앞둔 상황에서 사울은 다급한 나머지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무당의 영매술로 사무엘의 영을 불러낸 사울은, 평상시에 사무엘이 입고 있던 겉옷만으로도 그를 즉시 알아보고 넙죽 절을 했다. 사무엘의 겉옷에는 선지자로서 그의 권위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삼상28:14)

겉옷을 다윗에게 준 요나단

사울의 첫째 아들인 요나단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대권을 맡을 세자로서의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이 아닌 다윗에게 있음을 알았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요나단의 믿음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요나단의 겉옷에는 차기 대권을 맡은 세자로서의 권위가 함축적으로 들어있었다. 이런 겉옷을 다윗에게 준다는 것은 단지 다윗과 의형제의 정표를 나누는 물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18:3,4)

엘리사를 위해 겉옷을 남기고 승천한 엘리야선지자 엘리야는 여리고에서 승천하기에 앞서 자신을 따르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웠다. 자신의 임박한 승천을 앞두고 엘리야는 엘리사의 소원을 물었다. 이 때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있는 영감이 자신에게 두 배가 있기를 간구했다.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회리바람과 함께 승천하면서 자신의 겉옷을 후계자인 엘리사를 위해 남겨두고 갔다. 엘리야는 왜 겉옷을 남겨두고 승천한 것일까?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가서 따뜻하니까, 아니면 하늘나라는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겉옷이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고 간 것일까? 엘리야가 남기고 간 겉옷에는 선지자로서의 모든 권위와 영감이 들어 있었다. 엘리야는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의 소원을 들었고 이를 위해 특별히 자신의 겉옷을 남기고 간 것이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왕하2:11-13)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엘리사는 요단강을 가르게 하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함으로써 화려하게 선지자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2:14)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 앞에 겉옷을 깐 무리들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고 승리의 입성을 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복음서에서 가장 영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감람산 위에 모인 수많은 순례객들은 자신의 겉옷을 예수님 앞에 깔고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막11:8-10)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유월절과 같은 큰 축제를 위해서 감람산 위에 있는 베다니와 벳바게에는 갈릴리에서 내려오는 순례객들을 위한 임시 텐트촌이 세워졌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모든 순례객들을 모두 흡수하기에는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그대로 이루셨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벳바게의 텐트촌에 구름 떼처럼 모여든 갈릴리 출신의 순례객들은 같은 고향인 갈릴리에서 온 능력의 선지자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승리의 환호를 부른 것이다. 이들은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내려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그 앞길에 자신들의 겉옷을 펼친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 메시아적 소망을 보았고,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앞길에 자신들의 권위와 정체성이 담긴 겉옷을 깔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는 예수님이 앞장 서서 로마의 꼭두각시 정권의 타도를 위한 무장궐기의 선봉대에 서 준다면 자신들은 기꺼이 따르겠다는 정치적인 의미도 담겨 있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의 행동은 세례 요한의 뒤를 잇는 수퍼스타로서 예수님의 인기몰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유대 땅을 다스리던 로마와 로마에 빌붙어 살아가는 친로마파 유대인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을 것이다.

- 사울의 발 밑에 겉옷을 둔 무리들

겉옷과 관련된 성서시대의 의미와 함께 이러한 ‘겉옷을 남의 발 밑에 둔다’는 말이 주는 특별한 의미를 알 때,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반과 관련된 사울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도 쉽게 풀릴 것이다. 스테반을 성 밖으로 끌고 나온 무리들은 스테반을 돌로 치기 전에 자신들의 겉옷을 사울의 발 밑에 두었다.

돌을 던지기 전에 겉옷을 벗었다고 하면, 이는 현대인들에게 자칫 돌을 제대로 강속구로 던지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 젖힌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프로야구장에서 경기 시작에 앞서서 시구를 하는 사람이 시구에 앞서 겉옷을 벗어 자신의 비서에게 주는 것을 연상하기 쉽다. 그렇다면 사울은 이들이 벗은 겉옷을 맡아주는 구경꾼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성서시대에 ‘겉옷을 남의 발 밑에 둔다’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남에게 온전히 맡기고 순복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를 볼 때 사울은 스테반을 끌고 나온 무리들을 총지휘하는 리더십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압제하에서 사형 집행권을 빼앗긴 유대국가의 상황에서 무리들은 자칫 스테반을 돌로 쳐서 죽일 경우에 발생할 문제들로 인해 멈칫한 듯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장인 사울의 발 밑에 겉옷을 맡김으로 사울의 재가를 기다렸고, 사울은 이들의 행위를 허락하는 가편 투표를 했을 것이다. 즉 무리들이 스테반을 죽이기 전에 자신들의 겉옷을 사울의 밭 밑에 둔 것을 볼 때 사울은 스테반의 살인에 있어서 단순 가담자나 구경꾼이 아닌 적극 가담자요 주동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행26:10)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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