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5,573 | 2013-06-05

“녹색테이블 위로 강력 드라이브, 복음 탁구공 서브!!”

◈6월 5일 묵상테마는 갓피플 매거진 5월 커버인터뷰 내용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직경 40밀리미터, 무게 2.7그램, 셀룰로이드로 만든 탁구공은 모든 공 중에 가장 작고 가볍다. 하지만 양영자와 같은 선수의 손을 만나 녹색 테이블 위를 날아다닐 때, 탁구공의 힘과 대중 영향력은 전혀 만만하지 않다.

전 국가대표 여자탁구선수,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는 바로 이 탁구의 중흥을 이끈 대표주자 중 하나다. 당시 파트너는 현정화였다. 그런데 서울올림픽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양영자는 탁구 활동을 계속 해온 후배 현정화나 요즘‘얼짱’탁구선수로 유명한 20대 서효원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모양이다.

서울올림픽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양영자를 잘 알지 못한 까닭은, 올림픽 이후 곧 은퇴했다가 1997년부터 15년간 남편 이영철(전 연합통신 국제부 기자)과 함께 한국WEC국제선교회 소속 몽골 선교사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2012년 3월) 채널A의 ‘불멸의 국가대표’에 서효원과 함께 출연했을 때, 20대 시청자들은 서효원의 엄마뻘인 양영자의 식지 않은 탁구 열정과 여전한 기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고로 양영자는 1964년생, 1978년생인 서효원의 소속팀(한국마사회) 감독은 현정화였다.

1973년, 이에리사와 정현숙 조(組)가 한국 구기 종목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해 탁구 붐을 일으키던 해, 초등 3년생이던 양영자는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대와 20대의 15년간 선배 이에리사(국회의원, 전 태릉선수촌장) 등의 지도 아래 국가대표로 탁구인생을 살았다. 50년가량의 인생에서 15년은 탁구에, 또 15년은 하나님나라 선교에 두루 바친 셈이다.

물론 탁구선수 시절에도 국제대회 기간조차 전도지를 들고 다녔다고 하니, 양영자에게 스포츠와 선교는 일찌감치 별개가 아니었다. 현정화를 비롯 국가대표 탁구선수들 중에 독실한 크리스천이 유독 많은 배경에도 양영자의 전도와 기도 열정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상 최초 남북단일 탁구팀(1991년 국제선수권대회 참가) 이야기를 영화화한 ‘코리아’(2012년 작)에 반영되지 않은 비화(秘話)는, 참가선수들이 합숙기간 40일 내내 새벽기도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양영자가 전도했거나 함께 신앙생활을 한 선수들이었다.

작년 귀국한 양영자는 올림픽 방송 해설자로 활동하는가 하면, 청소년국가대표 후보선수단 감독이 되어 미래의 탁구 꿈나무를 발굴 육성하느라 요즘 무척 바쁘다. 남편 역시 몽골에서 해온 성경번역을 성경출판으로 마무리하면서 WEC선교회 활동으로 분주하다. 몽골에서도 탁구로 선교활동을 펼쳤다는 양영자 선교사를 만났다.

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

서울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은퇴하고 몇 년 후 결혼, 선교사가 되셨습니다.
은퇴는 1989년 초였어요. 사실은 어려서 입은 팔목 부상과 간염으로 건강이 오래 좋지 않은 가운데 애써 견디며 선수 활동을 했었거든요.

은퇴하고도 트레이너 활동은 1년가량 계속했지만, 속이 심히 상할 일을 겪으면서 우울증이 깊이 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어요. 내가 경기장에서도 전도에 열심 내던 크리스천이었다는 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생활이 황폐해졌고요.

그랬는데 주변의 기도를 힘입어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남편과 1992년에 결혼했고, 이듬해 남편이 총신대학원에 진학해 사모가 됐습니다. 그리고 원래 저도 그랬지만 남편도 선교 비전이 있어서, 1996년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거기서 WEC선교회를 만나 선교훈련을 받고 1997년 몽골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몽골의 오지 생샨드에서 남편은 교회개척과 성경번역을 하고 저는 탁구클럽을 지도하며 선교했지요. 단순한 선교사 신분만으로는 사역하기 어려웠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탁구를 지도하는 제 신분이 몽골에서 장기간 사역하는 데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몽골에서 사실 때, 혹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저는 아직도 왼쪽이 좀 갑갑해요. 몽골에 간 지 몇 해 안 되었을 때, 안면마비가 왼쪽에 왔었거든요. 갑자기 눈이 안 감기고 밥을 먹어도 흘리고, 느낌이 없어지더라고요.

웃어도 왼쪽은 안 움직이고 귀도 아프고. 음식과 환경이 맞지 않아 처음에 고생을 좀 한 탓인가 봐요. 제가 원래 채식을 좋아하고 육류는 즐기지 않는데, 몽골은 유목문화라 기름진 음식이 대부분이거든요.

그 뒤 치유는 되었는데, 다만 그 후로 지금까지 왼쪽 귀는 청력검사를 하면 아무 이상 없지만 느낌으로는 잘 안 들리는 것 같아 누가 말하면 귀를 더 기울이곤 합니다. 그리고 눈은 대부분 잘 못 알아보시는데, 자세히 보면 좌우 눈의 모양이 조금 다르죠.

탁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이리(현 익산) 남성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어요. 그해 사라예보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선배님들이 세계선수권대회 최초로 단체전 우승을 하고 전국적으로 탁구 열풍이 일었는데, 그 영향인 것 같아요.

훗날 제가 올림픽 대표선수로 뛸 때 감독님이 이에리사 선배님이셨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참 특별한 인연이네요. 지금도 제가 탁구 활동을 계속 하도록 많은 응원을 해주고 계시지요. 탁구를 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사생대회였습니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러 야외로 나갔는데 저는 진득하니 앉아 그림을 그리지는 않고 왔다갔다 돌아다니며, 친구들 그림 그리는 거나 참견하고 있었어요. 그걸 지켜본 담임선생님과 옆 반 선생님이 “영자는 그림보다 탁구 시키는 게 낫겠다”는 의논을 하셨대요. 옆 반 선생님이 신설된 탁구클럽 지도자였거든요.

교회 다닌 계기도 탁구라고 하던데.
중학생이 되어 탁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제가 승부근성이 강한 건 좋았지만 성격은 좀 그랬나 봐요. 탁구를 치다 뜻대로 안 되면 라켓을 내던지기도 하고(웃음). 그걸 본 지도 선생님이 교회는 안 다니면서도 ‘영자가 교회 다니면 좀 수양이 되려나?’ 싶어 교회 가보라 권하셨어요.

군산 출신의 이종학 선생님이라고, 그 선생님 여동생 이름이 경실인데 나중에 보니 개그맨이 되었더군요. 그런데 팔이 아파 그거 낫게 해달라고 교회 다닌 것이기도 해요. 제가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스타일이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진통제를 달고 살았거든요.

제 어머니가 알고 보니 원래 교회는 다닌 적이 있었는데 쉬고 계시다가, 3남 3녀 중 막내딸인 제가 그런 모습 보고 같이 다니게 되셨어요. 엄마랑 같이 하나님께 제 팔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금세 낫지는 않더라고요. 정형외과 갔더니 탁구 그만 두면 된다는데, 그럴 순 없잖아요.

탁구선수로서 팔꿈치 부상이면 치명적이었겠습니다.
국가대표 되겠다는 꿈도 있고, 그래서 거의 6년가량, 대학 들어가서까지 진통제 맞아가며 탁구를 했어요. 나중엔 진통 주사마저 듣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고교 졸업하고 대학 1학년 때, 강원도의 H기도원 이야기를 들었어요. 거기서 유명한 축구감독님도 안수 받고 관절염이 나았다 해서, 솔깃해서 간 것이죠. 그런데 기도 받기 전에 목사님이 주신 말씀이 십자가의 복음이었어요.

저는 기도원 처음 갔으니 안수기도만 받고 오는 건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그렇게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니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요. 눈물 콧물 흘리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리고 안수기도 받았는데, 정말 팔이 안 아파요!

팔이 나은 것도 기적이지만, 제게 진짜 구원의 확신,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정말 이제는 사도 바울 같은 삶을 산다 해도 두려울 것 같지 않더라고요. 팔의 치유보다 복음이 주는 힘이 그렇게 크더라고요.

치유 체험마저 분명하니 신앙이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몰라요. 종일 훈련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끝나면 교회 가서 기도하고, 새벽기도 가고 철야기도 가고, 선수촌에 있을 때는 선수들 모아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게 일이었어요.

선수들과 기도했단 말 나온 김에, 영화‘코리아’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제가 은퇴한 다음 이야기이지만, 그 영화에 나오는 선수들이 40일 동안 아침에 모여 새벽기도를 했다고 해요. 영화엔 그런 이야기 하나도 안 나왔지만. 그 중 P선수는 목사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열심이고 나중에 옥한흠 목사님 비서와 결혼하고 아랍권 선교사가 됐는데, 원래는 제가 아무리 전도해도 말 안 듣던 불신자였어요.

교회보다 절에 가서 진리를 찾겠다고 기차 타고 부산 가는 길에 어떤 장로님을 만나 전도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흘인가 밥도 안 먹고 해운대에서 성경을 통독했다는데,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이죠. 그때 주역인 현정화, 유남규는 말할 필요 없이 신실한 후배들이고.

팔목 치유 후에도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한참 간염이 유행이었는데 제가 그만 감염됐어요. 코치와 선수들 중에도 저 같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86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서 탈락됐어요.

그럼 상비군이 되는데, 그 말은 처음부터 고등학생들과 똑같이 선발전에 다시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자존심도 상했지만 체력적으로도 무리였고 승부의 세계가 냉정한 것을 알게 됐는데, 결국 말씀이 저를 붙들어주었습니다. 잠언 24장 16절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는 말씀이 큰 힘이 됐죠.

하나님께서 저에게 여기서 주저앉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3차부터 1차, 그리고 그때 국내최강전이라는 게 처음 생겼는데, 최강 자리 차지하고 86아시안게임 때부터 현정화 선수랑 같이 하게 됐지요.

선수 시절 출석하던 교회는 어디였습니까?
사랑의교회요. 당시 제 숙소가 서초동 상가에서 개척하던 그 교회 앞이었어요. 고1때부터 서울 올라와 대표선수단 훈련하고, 83년에 제일모직 입단해 숙소 생활 할 때부터 다녔어요. 옥한흠 목사님이랑 새벽기도 끝나면 ‘탁구 쳐드리고’, 재미있었지요.

86아시안게임 때 역대 최초로 중국을 꺾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중공이라 불렀죠. 탁구를 너무 잘 쳐서 다들 무서워했어요. 16강부터 개인전으로 중공과 붙는데 이기니까 8강에서 중공 선수가 또 기다리고 있고, 특히 8강에선 세계 랭킹 1위와 붙었거든요.

그런 선수를 내가 3대 0으로 이겼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인데, 마치 하나님이 내 팔을 붙들고 휘두르신 것 같았어요. 4강에서 세트 스코어 2대 2 상황, 5세트는 20대 16으로 제가 지고 있었어요.

한 포인트만 지면 3,4위전으로 밀려나는 거잖아요. 20대 20까지 갔다가 이긴 거예요. 아쉽게도 결승에서는 졌지만, 그때는 단식에서 은메달도 최초였어요. 중국 킬러라는 별명 얻었고 매스컴에 더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죠.

‘스카이서브’라고 하나요? 신기술도 개발하셨다고.
공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내려치는 서브 기술이죠. 요즘엔 거의 다 하는 기술이지만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그거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81년인가 세계선수권대회 후보선수 자격으로 갔다가 중국 선수들이 스카이서브 하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게 일단 위압감이 있어요. 상대가 불안해해요.

내려오는 공에 힘을 더하기 때문에 회전이 더 많이 될 수 있는 거고, 일단은 공이 어디로 빠질지 모르니까. 그래서 공포의 스카이서브라고 했죠. 저도 흉내 내는 걸로 시작해 나름 독창적인 서브 방식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성공한 거죠.

그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지요.
현정화랑은 이미 87년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복식 금메달을 땄었어요. 그러니까 88올림픽에선 당연히 딸 거라고 다들 기대하니까 오히려 부담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제 단식에서도 금메달 한번 따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을 거 아니겠어요? 국민과 매스컴의 기대야 어떻든 선수 개인의 목표도 있으니까.

복식 연습은 정화랑 열심히 했지만 저도 속으로는 단식에서도 잘하자는 마음이 있었지요. 그리고 단식을 먼저 하게 됐는데, 8강에 오를 때 시드 배정이라고 맞붙을 선수 배정을 제비뽑기하는 게 있어요.

배정 발표가 늦어져 자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야 알게 됐는데, 정화나 저나 8강부터 안 만났으면 하는 선수들끼리 만난 거예요. 소련과 체코의 선수들이었는데, 단식에 강했어요. 같이 8강에서 떨어진 거죠. 그러니 이제 복식만 남았잖아요.

서로 잘해보자며 몸도 마음도 늘 하나가 돼 있고 시합 들어가기 전에 함께 기도하곤 했는데, 이건 지면 진짜 역적이 되고 이기면 본전인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부담이 더 컸지만, 감사했던 건 하나님이 참 편안한 마음을 주셨던 거예요. 고비는 있었지만, 마지막 세트는 아주 쉽게 이기고 금메달을 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올림픽 직후 은퇴하고 한동안 활동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올림픽까지 간 것도 제겐 기적이었어요.간염 때문에 86아시안게임 끝나고 의사가 그만두라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88올림픽 때 탁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선수로서 참가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거든요. 기도하며 하나님 은혜로 해낸 것이죠.

그래서 바로 은퇴하는데, 그 무렵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셔요. 그때 집안일로 너무 속이 상했어요. 그 때문에 우울증이 온 겁니다. 1년 반에서 2년 정도, 아무도 안 만나고 진짜 아무것도 못했어요. 회생 불가능할 것처럼 심각했어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탁구선수면서 전도자라는 별명도 있던 제가 그러고 있으니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는 시기였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을 제게 보내주셨어요. 아침마다 큐티 묵상 훈련을 시켜주셨는데, 주변의 기도 가운데 말씀이 들어가니까 회복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말씀의 능력을 깊이 깨닫게 됐죠.

마태복음 25장 40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을 볼 때, 8년간 국가대표 시절에 좋은 대접만 받았지, 작은 자들, 말하자면 후배들에게 냉수 한 잔 권하지 않은 사람이던 걸 보게 하셨어요.

저는 교회 뜰만 밟던 사람이었고요. 회개기도 하면서, 이 우울증을 회복시켜주시면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찬양 가사처럼 “이 땅에 빛과 소금 되어 가난하고 지친 영혼주님께 인도하고픈데” 하며 많이 울면서 기도했어요.

그 무렵 남편 만나신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저를 친정엄마처럼 도와주시던 집사님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계실 때 저를 초청하셨어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보셨겠죠. 그때 마침 남편 이영철 선교사가 연합통신 국제부 기자 시절에 자카르타 한국 기업 취재를 온 거예요.

그도 알고 보니 사랑의교회 청년부원이었고 스치고 본 안면은 있었는데, 거기 기업 대표 장로님 통해 저녁식사 초대 받고 왔다가 저와 만난 거예요. 그때 저는 우울증 때문에 폭식증으로 살도 많이 찌고 말도 않고 다소곳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게 순종적으로 보였다나요?

남편은 그 무렵 예수전도단에서 DTS 훈련받고 선교사 되려고 휴직하려다, 이상하게도 다시 회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복귀한 건데 저를 만난 거래요.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데이트다운 데이트 해본 적 별로 없고, 남편이 새벽마다 큐티 한 거 제게 보여주곤 했어요.

결혼하고도 제 상처가 치유 안 돼 싸움이 나도 남편이랑은 부부싸움이 안 돼요. 저쪽 가서 기도하고 있으니까. 우울증에서 회복은 되어갔지만, 오히려 남아 있던 분노와 상처가 결혼하면서 나타났던 것이죠. 전 원래 결혼 생각은 꿈도 못 꿨거든요. 저 같은 아이들 나올까봐.

그런데 결혼하고 바로 딸 둘 연년생으로 낳으니까 놀림 받기도 했는데(웃음).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저를 내적으로 치유해주신 것이었어요. 몽골에서 안면마비 와 병원 다닐 때 남편이 이랬어요.
“당신이 얼굴 이상해져도, 나 당신 사랑할 거야.” 남편 힘들게 하던 신혼 때 남편이 ‘어떻게 내가 저런 사람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 생각한 적 있었다고 고백해서 아찔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행복해 하죠. 저 때문에.

따님들이 오랫동안 엄마랑 떨어져 있었다죠?
반재(20)와 윤재(19)가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 바이올라대학에서 선교의 비전을 품고 다문화 전공을 같이 하고 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엔 대전국제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었고요. 부모랑 멀리 떨어져 살았어도 주님이 좋은 선생님들 붙여주시고 반듯하게 키워주셨으니 하나님 은혜입니다.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10년 넘게 번역해온 몽골어 성경이 작년에 나왔는데 잘 보급될 수 있도록, 좋은 탁구선수들이 발굴되어 한국 탁구가 다시 중흥하고 또 그 가운데 믿음의 선수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은 청소년을 지도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어린 유소년 꿈나무들을 발굴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지도하고 싶어요. 탁구와 선교가 제게는 별개가 아니라 한몸 같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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