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0,408 | 2014-03-04

“그런데 이제는 지쳤다.”

여러분은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자신에 대하여 실망스러운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절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변화되지 않는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김용의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일화 하나가 참 귀해서 옮겨봅니다. 한번은 김용의 선교사님이 선교사 모임에 말씀을 전하러 갔다고 합니다. 하루 먼저 도착해 다음 날 전할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련회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듣다가 몹시 낙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이제는 너무 지쳤어요” 하니까 옆에 있던 분이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은혜 받는 것이 무서워요.”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 말씀을 전해도 쉽지 않은데, 저렇게 낙심한 선교사님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하나?’이런 생각이 드니까 밤에 잠도 오지 않아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깨달아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누구 편에서의 문제인가?’, 모든 것이 사람 편에서의 문제임이 깨달아졌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라는 것이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아무개야, 내가 너를 변화시켜보려고 무지 애를 썼다. 그런데 이제는 지쳤다. 너를 사랑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이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제는 너를 보면 무섭다.” 하나님께서 만일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떡하겠습니까? 솔직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법한 상황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결국 주님을 지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지치시거나 포기하실 가능성이 단 1퍼센트만이라도 있다면 복음은 끝장인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단 1퍼센트라도 있다면 그 역시 끝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까지나 어떤 처지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분명한 약속의 증거를 보여주시며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자신에게 실망했더라도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입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의 감동적인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나는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되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될 수 있었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을 보면 슬픔이지만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쁨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자유기성 | 규장


† 말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하박국 3장 17, 1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 기도
주님, 변하지 않는 제 자신으로 인해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의지함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낙심 될 때가 있나요?
어떤 모습이든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주님만을 예배하기를 결단해보세요.
은혜를 받았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