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4,961 | 2014-06-04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그때로부터 정확히 12년이 지났다. 2002년 6월이었다. 우리는 그 꿈같던 날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6월의 능선 14일은 제17회 한일 월드컵에 개최국으로 참가한 대한민국의 세 번째 경기, 대 포르투갈 전이 열린 날이었다. 그날 경기를 이기면 한국은 오매불망 바라던 월드컵 16강에 오를 것이었다.

앞서 4일과 10일, 대한민국 대표팀은 폴란드와 2대 0, 미국과 1대 1 전적을 내며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활활 달구는 중이었다. (그리고 2014년 6월, 세상은 제20회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또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은 그해 16강을 목표로 삼았었지만, 그러나 강호 포르투갈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1대 0 한국의 승리! 이날 박지성이 넣은 골이 바로 이영표가 정확하게 어시스트한 것이었다.

그리고 관중석이‘꿈★은 이루어진다’카드섹션을 선보이며 시작된 18일 대 이탈리아 16강전, 안정환이 넣은 역전 골든골도 다름아닌 이영표의 어시스트 덕분이었다.

무려 4강까지 올랐던 2002년 월드컵은 우리에게는 꿈이 이루어진 감격 의 나날이었고, 이영표에게는 그의 4가지 기도제목에 모두 응답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날들이기도 했다.

최근, 집사로서 출석하는 온누리교회에서 간증을 한 이영표는 월드컵을 준비할 당시 4가지의 기도제목이 있었다고 밝혔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땅의 주인이심을 알리도록 그라운드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있기를, 둘째는 16강에 진출하게 해달라는 것,

셋째는 유럽에 선수로서 가게 해달라는 것, 넷째는 그런 선수생활의 지속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모두는 불가능했다.

골 들어갈 때 수비수가 기도하는 모습이 TV에 비칠 일은 없고, 한국이 1승이라도 거두면 다행이라는 분위기였고, 공격수가 아닌 그를 유럽 축구팀이 스카우트 할 리 없었고,

당시 법으로는 월드컵 출전 선수에게 군 면제 혜택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이루어졌다.

아니, 모두 이루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이다. 제20회 브라질 월드컵이 열릴 날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요즘 이영표를 유독 자주 만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시즌 마지막 경기의 주장으로서 팀을 승리로 이끈 뒤 은퇴, 올해부터 5년간 KBS 축구해설위원이 된 그가 이번 브라질 월드컵 때 KBS 중계 해설을 맡기도 할 것이지만,

5월에는 개그맨 강호동 정형돈 등과 함께‘우리 동네 예체능’축구편에 출연하는가 하면,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함께 리스펙트(respect) 홍보대사로서 축구 캠페인 홍보영상에 등장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청춘 토크’ 강연도 여러 번 했다. 그는 선수 시절 몇 가지 제목을 품고 노력하며 기도했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서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로 응답되고 쓰임 받고 있는 듯하다. 마치 요셉처럼 말이다.

이영표는 어떤 믿음으로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시고 역사하셨던 걸까?

글 이한민 / 사진제공 KBS 스포츠 취재국 & 홍성사 & Canada Whitecaps FC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두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었지요?
개막 사흘 전인가, 연습하다 부딪혀 넘어졌는데 근육이 12센티미터 쯤 찢어져 6주 진단에 회복까지 3개월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깁스를 했고 아파서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월드컵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죠.

언론은 부상당한 이영표 대신 누가 투입되는가 하는 예측기사를 곧바로 쏟아냈습니다. 하루에 버스 두 번 오가는 강원도 홍천 산골 출신 소년이 안양 이사와서 달리기 잘한다고 축구선수가 되고,

유일하게 품은 꿈이 국가대표 되는 것이라 청소년 시절엔 줄넘기 2단 뛰기 1000번을 한 번에 해낼 정도로 10년 넘게 개인 연습도 열심히 했고, 선수 시절에 예수님 믿고서 일평생 단 한 번의 기회가 될 대한민국 월드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왜 뛰지도 못하게 하시는가, 하나님께 너무 섭섭했습니다.

실망과 분노로 힘들어할 때 아는 선교사님이 욥기를 읽어보라 하셔서 말씀을 보는데, 이런 주님 음성이 제 속에서 들려왔어요.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니?”
“당연히 축구고 월드컵이죠!”
“너 그거 나를 위해 포기할 수 있니?”

말로는 월드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했지만 사실 내 속에는 잘해서 인정을 받아 유럽에 진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고, 월드컵을 포기하겠다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기도하니 평안해지고 행복한 마음마저 들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히딩크 감독님을 만났는데, 예상 밖으로 저를 안 바꾸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감독님이 외국인 치료사 두 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한명을 하루 종일 저에게만 붙여주셨어요.

다음날 신기하게도 다리가 아프지 않은 거예요. 목발 없이 걸었고 사흘 뒤엔 뛰게도 되더라고요. 의료팀에선 오진 (誤診) 아니었느냐,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고.

하지만 저는 재활 훈련을 하기로 해서 처음 두 경기는 쉬고 세 번째 포르투갈 전에 나갔던 건데요, 보통 선수가 10일 정도 쉬면 체력이 떨어져 90분을 소화하지 못하는데 저는 전혀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그날 어시스트한 공이 들어가 16강 진출이 결정되고 운동장에서 믿는 선수들끼리 무릎 꿇고 한참을 감사하며 기도드렸는데, 그 장면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수비수인데, 골 넣지 않고 어떻게 영광을 돌립니까?” 제 생각은 그랬는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죠.

하나님께 그렇게 영광 돌리게 되고 16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했고 특별법으로 군 면제도 받았는데, 유럽엔 어떻게 가게 되었습니까?
월드컵이 끝나고 6개월간 거의 매일 새벽기도를 했어요. 유럽에 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제 체격이 선수치곤 왜소하고 포지션과 재능을 봐도 가능성이 없었어요.

주변에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계속했어요.

그러던 2002년 11월 24일 주일예배 때 찬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고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거든요.

“내가 너를 유럽에 보내주겠다.”
하나님이 말 바꾸실까봐 찬양 끝나고 성경책에 메모지 붙여 바로 날짜 쓰고 이렇게 적었어요.
“하나님이 나를 유럽에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상황은 전혀 변한 게 없었지만 마음엔 유럽에 간다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정확하게 2주 후, 개인 일로 한국에 다시 온 히딩크 감독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그리고 또 정확히 5주 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박지성과 함께) 아인트호벤으로 갔어요. 제게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죠.

지금은 바라던 대로, 또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
저는 운동하면서 성공이나 승리의 경험보다 어쩌면 실패하고 패배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또 경기는 늘 결과로 평가되기에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엔 실패한 것 같지만 나중엔 그걸 딛고 일어서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요.

반대로 당장은 성공한 것 같아도 실패의 길로 가는 사람도 종종 봤어요. 그러니 현재의 성공한 모습 또는 실패한 모습이 전부라고 본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어요?

저는 그래서 성공과 실패가 반대말이 아니라 한 단어라고 생각해요. 오늘 실패했지만 내일은 성공할 수 있고, 오늘 성공했지만 내일은 실패할 수도 있어요.

특히 청년 시절은 더 그렇지 않나요?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실수와 실패를 맛보고 괴로워할 수 있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고 실패했어도 좌절해선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성공과 실패는 같은 말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걸 주기 원하시는데 어떤 사람에겐 현재 성공을 주는 게 좋은 거고 어떤 사람에겐 지금의 실패가 좋은 것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 눈엔 완전히 달라보여도 하나님 눈엔 성공이나 실패나 사실 같은 거 아닐까요? 그래서 몇 년 전 냈던 제 책 제목이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홍성사 간)였잖아요.

중요한 건 인생에서 무엇이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근접한 결정을 하고, 그런 다음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말 나온 김에 청소년,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다면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인 진리와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상황에 따라 우리 마음이 변할 뿐이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죽음을 콘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지는 것이죠.

우리가 그토록 무기력한 존재인 것을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고 무릎 꿇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읽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이끌어주시거든요. 그리고 늘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한데, 저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말만 하는 건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하단 걸 겸손해서 잘 안다면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태도가 진정한 겸손이 아닐까 싶은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 성공을 위한 탐욕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청소년들에게 또 이런 말을 해주곤 합니다.

“힘들어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 나중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제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한 가지는 바로‘노력’인데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체력을 키울 결심을 하고 한 번에 줄넘기 2단 뛰기 1000번이 가능하도록 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3학년이 될 때 그게 되더라고요. 3단 뛰기를 한 번에 100번 할 수 있었고, 노력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거죠.

크리스천으로서‘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제 기도제목이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쉽진 않아요. 그러니까 기도제목인데요, 제가 청년들에게 한 가지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건 우리 크리스천들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지 않고 죄가 있기 때문에 정직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 크리스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스물두 살 때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 전에는 기독교인들은 위선적이고 사랑을 말로만 하고 실제로는 사랑이 없다고 생각해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이었어요.

거꾸로 말하면 크 리스천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제가 크리스천이 되어서 가까이서 봐도 세상 사람이나 크리스천이나 사실 다를 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상당히 실망하기도 했어요. 부끄럽지요. 하지만 다른 것 하나를 느꼈어요.

하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똑같이 죄가 있지만, 믿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용서 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인 거죠.

비록 행동은 다 바르게 하지 못하지만 말예요.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건 엄청나게 다른 것이에요.

불신자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기독교 신앙을 가져볼까 고민할 때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어요.
“하나님, 당신을 먼저 제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믿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될 수 없는 일이었죠. 제가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비로소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볼 수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믿음에는 결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결단이 결코 쉽지 않죠.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안정되고 편한데 굳이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진 않거든요. 하지만 한 발만 옮기면 돼요.

제가 옛날에 본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는 이쪽 계곡과 저쪽 계곡 사이에 다리가 안 보이지만 모래를 뿌리니까 다리가 드러나는 장면이 나와요.

믿음은 그런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다리가 있다고 믿고 내딛는 것이죠.

전도와 교회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제게 전도함으로 저를 흔들고 갔기 때문에 결국 믿게 되었는데요, 하나님을 만나니 전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복음전달은 우리의 몫이잖아요. 처음 예수님 믿고 전도에 한창 열심일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누군가에게 전도하고 있는데 선배들이 지나가다가 “너는 교회 나간 지 며칠 됐다고 아는 척이냐?”며 핀잔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렇게 싫은 소리 들을 바에야 전도하지 말까 생각했는데, 숙소에서 가지고 있던 신앙서적을 펼쳐보게 됐어요. 하얀 페이지 한 가운데 이런 글이 써 있더군요.

“진리를 아는 자가 진리를 모르는 자 앞에서의 침묵은 옳지 않다.” 그 책이 이재철 목사님이 쓰신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였는데, 놀라운 건 그 책엔 그런 글이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두세 번을 다시 찾아봤는데, 없어요. 한 지면에 그런 문장 한 줄만 있는 쪽도 없고.

어쨌든 전도는 해야 하는데, 사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봤을 때 크리스천이 무슨 말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안 믿을 때 그랬거든요. 중요한 건 크리스천이 무슨 행동을 하느냐를 본다는 겁니다.

교회에 모임도 많고 좋은 말도 많은데 한국 기독교가 이 땅에서 왜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말만 했지 행동이 없었기 때문 같아요.

그런데 크리스천은 행동했다고 생각하지요. 어디서? 교회 안에서요! 교회 안에서는 서로 봉사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있거든요.

사랑이 교회 담장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담장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니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죠.

각자의 직업 현장에서 크리스천답게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며 행동하는 건 기본이고요. 또 바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재정도 교회 담장을 많이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교회 안에서만 쓰지 말고요.

선수로서 월드컵을 3연속 출전했고 이번엔 해설자가 됐는데요.
해설자가 됐으니까 잘 준비해서 해설 잘하는 데만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축구 중계의 본질에 충실한 해설자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갓피플과 나누고 싶은 생각 한 마디
저도 하나님 믿지만 연약해서 항상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고 모두 똑같이 고민하시는 문제인데요, 모든 인간이 언제나 착할 수 없고 겸손할 수도 정직할 수도 없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한계예요.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착한 척은 했으면 좋겠어요. 겸손한 척 했으면 좋겠어요. 정직한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겸손하지도 정직하지 않고 믿음도 좋지 못하지만, 세상에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크리스천은 그렇게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제안하고 싶어요.

이영표 트위터 twitter.com/fromth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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