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8,231 | 2014-06-19

편리하고 편한 삶을 원한다면, 다시 선택하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예수님은 “날마다 십자가를 져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핵심 내용이 이해되는가?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한 일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제안은 풍족한 삶이나 성공이 보장된 삶, 혹은 고통과 몸부림과 갈등이 없는 삶으로의 초대가 아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죽으라고 하신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예수님이 바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도대체 예수님은 우리를 어디로 초대하고 계신 것일까? ‘사는 것’인가, ‘죽는 것’인가? 물론 그 답은 둘 다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것이야말로 예수님 나라의 거꾸로 뒤집힌 신학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주장하셨다.

“첫째가 되고 싶거든 꼴찌가 되어라. 자유로워지고 싶거든 종이 되어라. 살고 싶거든 먼저 죽어라.”

합리적으로 들리든 그렇지 않든, 예수님이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내미시는 초대는 이것이다. “살기 위해 죽어라!”

그러나 죽으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우리의 육체와 뼈에 관련된 얘기가 아니다. 그 초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에 관련된 얘기다. 사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 매일 매 순간마다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영적으로 죽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십자가는 죽인다. 그리고 정복하고, 압도하며, 승리한다. 언제나 그렇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그야말로 날마다 죽으라는 초대이다.

그것은 주일 하루가 아니라 매일 우리 육체의 욕망을 죽이라는 부르심이요, 자아에 대하여 죽으라는 부르심이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순복順服하라는 부르심이요, 유혹의 속삭임을 묵살하라는 부르심이요, 수백만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순간적으로 누리는 육정을 만족시키는 매력에 흔들리지 말라는 부르심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편안하거나 편리하지 않다. 그러나 살고 싶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필요하다.

리얼제이미 스나이더 | 규장


† 말씀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마태복음 10장 38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로마서 6장 8, 9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장 13, 14절

† 기도
주님, 저의 자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부어주시길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의 자아에 대하여 진정으로 죽기 위해 내면에서 변화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은혜를 받았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