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6,716 | 2014-11-03

10. 룻기 : 올바른 선택은 영원에 잇댄다

1장 1절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고 언급된 것으로 보아 룻기는 사사 시대의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전체로 볼 때도 룻기는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룻기는 사사 시대의 밝은 면을 보여줍니다. 비록 시작은 사사기의 연속처럼 슬픔과 버림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회복하심과 축복으로 마칩니다.

또한 나오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회복의 축복에 멈추지 않고 더 멀리 보게 합니다. 룻기는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모압 족속의 여인인 룻이 어떻게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되는지를 보여주지요. 버림받은 자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동참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의 결과가 내 대의 축복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에 그리고 영원한 삶에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룻기는 성경 66권 중에 에스더서와 함께 여자의 이름을 따서 기록된 두 권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영원을 선택함

1장 1절은 슬픔으로 시작합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한 가정이 고향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갑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흉년으로 누려야 할 풍성함과 기쁨과 생명을 잃어버린 모습은 마치 사사 시대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떡집에 먹을 떡이 없습니다.

유다 베들레헴 사람인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지방에 살면서 두 며느리를 맞이하는 기쁨을 잠시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린 10년의 행복은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들은 떡이 없는 베들레헴을 떠났으나 어디에도 풍요함은 없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족들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흉년을 맞이하지요. 그래서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여 젊은 두 며느리에게 각자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한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와 헤어졌지만 또 다른 며느리인 룻은 그녀와 함께 갈 것을 선택합니다.

1장 16절에 룻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런 룻의 굳센 결심과 올바른 선택은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어찌 보면 어리석은 결정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젊은 과부가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가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으로 그녀는 모압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시게 하는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룻기는 이처럼 올바른 선택은 영원까지 우리의 삶을 보장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주님의 약속의 말씀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복되게 하고, 형통케 하는 비결인 것도 보여주지요.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잘되고, 성공하고, 형통하는 삶의 비결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쉬운 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쉽습니다. 이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규례 이상입니다. 룻기는 이 말씀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우리를 격려합니다.

2장 3절에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아스를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사실 ‘우연’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분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필연’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시어머니를 섬기는 룻의 사랑과 올바른 선택을 축복하셔서 보아스라는 경건한 남자를 만나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의 잠깐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영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섬길 때 주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구속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자 할 때 그 성읍 장로들과 수속을 밟는 과정은 성경에서 제시하는 회복의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 사람(노예)이나 재산을 그 사람의 가까운 친족이 다시 매입하여 조상의 소유로 돌이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같이 대신하여 회복해주는 과정을 ‘구속’(救贖)이라고 합니다. 구속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운 친족으로서 유능하고 의욕적이며, 남에게 구속받을 만한 일이 없어야 합니다.

보아스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였지요. 그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가족을 구속하고자 했습니다. 구속은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한 명 있었는데 보아스는 그에게서 권리를 양도받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때 오늘날은 도장이나 서명으로 하지만 당시는 신을 벗는 것으로 표시했습니다(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은 것도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양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여 보아스는 룻을, 그녀의 신분을 구속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평생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분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로 말미암아 룻에게 엄청난 신분의 변화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보아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룻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원래 노예의 신분이던 우리를 자유인으로 구속하셨고, 그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의의 자녀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데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룻의 고백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16,17).

룻의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고백이기도 하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부 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눅 14:27, 33). 다시 말하면 주를 따르는 삶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은 그런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자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제자의 삶을 살기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 먼저 충분히 계산을 해보아야 합니다. 다른 기대가 있다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 중도에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고백

“나를 나오미(희락)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괴로움)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를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1:20,21).
이처럼 나오미는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두 번이나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 아래에 맡겼습니다. 스스로 높이려 하지 않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 전적으로 순복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욥 22:29).

나오미는 베드로와 욥처럼 고난 속에서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자신을 낮추고, 그분께 자신을 맡길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결국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심으로 나오미를 높이시고 회복하셨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4:14).
고난을 바라보고, 슬픔을 묵상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보다 전능자 하나님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삶을 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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