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1,062 | 2014-11-04

40. 말라기 : 메시아의 사자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단지 순서상으로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증언하시고,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에게 공통적으로 메시아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으로서는 마지막 증인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을 이은 제2성전 시대와 함께 한동안 선지자의 시대가 마감된다고 하여 말라기서를 ‘예언의 봉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약의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엘리야를 소개함으로 큰 기대와 여운을 남깁니다.



하나님의 사랑

말라기서는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라고 그 제목을 달았습니다(1:1). 이 책 또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와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은혜의 감격이 점점 무뎌지고, 신앙도 형식적으로 되어갔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성전은 완공되었지만 그들의 삶은 율법적이고 종교적으로 변해서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말라기서는 그런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책망하고, 일깨워주며, 다시 믿음을 회복하도록 요청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고 딱딱하게 하며 냉랭하게 만들었을까요? 말라기서는 죄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죄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또한 말라기서는 성전을 소홀히 여기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린다고 심하게 책망합니다. 물질에 대해 정직하지 않은 거짓과 불공평하고 부당한 거래에 대해서 지적하고, 십일조의 삶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책망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마주앉아서 대화하듯이 우리를 설득하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형식으로 드리는 의식도, 예물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말라기서에서 말하는 두 가지의 큰 악이 있는데 하나는 ‘형식주의’요 또 하나는 ‘회의주의’입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넘어가면서 형식주의는 바리새인들이 계승했고, 회의주의는 사두개인들이 이어서 행합니다.



신약과 구약의 바통

말라기서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하는 신약과 구약의 바통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3장과 4장은 주가 오심을 예언합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시며 치유하실 것입니다. 또한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종이 앞서 그 길을 예비할 거라고 말씀합니다.

말라기서 4장 5,6절 말씀은 누가복음 1장 17절 말씀과 서로 연결됩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7).

말라기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면서 신약 시대를 구약 시대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대화(1장 2-5절)

말라기서는 하박국서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1:2). 그분의 모든 행위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까 하기보다 도리어 반문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 즉, “우리는 비록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 우리의 땅은 초토화되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그들의 역사에 나타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에서가 미움을 받을 행동은 했지만 그렇다고 야곱이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것입니다.



두 번째 대화(1장 6-14절)

하나님은 “내가 아버지인데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인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주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고 주를 더럽게 하였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살피는 일에 소홀해서 자신의 행위를 옳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에 자신들의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없고, 말씀을 소홀히 여길 때 우리의 영이 둔감해져서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흠이 있는 것과 눈 먼 것,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렸습니다. 영적 감각이 둔해져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의식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예배를 받지도 않으십니다.



제사장들의 직무(1장 6절, 2장 1절)

제사장들의 가장 큰 직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1:6-14). 제사장들의 두 번째 직무는 말씀으로 백성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섬기고 거룩함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직무에 충실하지 않았고,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받을 복이 오히려 저주가 되었습니다(2:2). 백성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입니다(2:9). 하나님이 그들의 섬김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2:3).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특권을 잃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죄는 결국 백성들을 죄 가운데 살게 했습니다(2:10-16). 하나님은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십니다(2:16). 이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잠 4:23). 우리의 죄는 마음의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최고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는 것입니다(잠 4:20,21).



세 번째 대화(2장 17절-3장 6절)

하나님은 “너희가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고, 그 결과는 말과 행동이 죄악으로 나아갑니다. 부정적이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비방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며 그들이 악을 행해도 하나님은 너그럽게 봐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부정합니다. 그러고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질문합니다. 즉 “정의의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혔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2:17).

하나님은 이처럼 오만하며 무신론적인 사고 방식의 소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답하십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여기 있다. 내가 곧 나타날 것이다. 나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3:1-6).



네 번째 대화(3장 7-12절)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것을 도둑질하였다”라고 하시자 그들이 “우리가 어찌 주의 것을 도둑질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돌아올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했다”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십일조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없었습니다. ‘내 것’ 중에 십분의 일을 떼어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입니다. 신명기 26장 12-15절에 십일조를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내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가 ‘내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내 것을 도둑질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 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내가 신앙생활을 잘못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십일조를 강조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돈이 모자라시거나 십일조가 없으면 하실 일을 못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학 2:8).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십일조는 ‘하늘 창고 문을 여는 열쇠’이며, 우리의 삶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보장’입니다.

더 나아가 3장 11,1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십일조 생활을 한다면 메뚜기를 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 돈이 나갈 때가 있고, 질병이나 사고를 예고 없이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또 도난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께서 붙들어주십니다. 우리의 땅을 복되게 하시고 환경을 축복하심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한 축복의 샘의 ‘마중물’과 같습니다.



다섯 번째 대화(3장 13절-4장 3절)

하나님이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 하시니 그들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
다음은 그들의 완악한 말입니다(3:13-15).

●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고생하며 하나님을 섬겨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고생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고통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 무슨 유익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어떤 재물을 얻었느냐? 십일조를 드리면 형통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손해만 보았다.
●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이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3:16-4:3).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의 말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게 될 엘리야(4장 4-6절)

4장 1-3절은 오실 메시아를 말씀하시고, 4-6절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오는 엘리야를 말씀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같이 선악을 심판하실 것이기에 그의 오실 길을 준비하며 내 삶을 살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함같이 나 자신이 내 삶을 준비하여 메시아를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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