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8,193 | 2014-11-04

51. 에베소서 :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교회

에베소서는 가장 우수한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서신서 중의 여왕’이라고도 합니다. 또 시인이며 철학자인 코울리지Coleridge, Samuel Taylor는 ‘인간이 쓴 가장 신성한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와 55개 이상의 구절이 닮아서 두 책을 ‘쌍둥이 서신’이라고도 합니다. 골로새서를 “마치 에베소서가 넘쳐나온 듯하다”라고 말하고, 에베소서를 “더 우수한 또 하나의 골로새서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회람

에베소서는 어느 한 교회에만 보낸 편지가 아니라 바울이 개척한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이 편지를 돌아가면서 읽기에 ‘회람(回覽)장’이라고도 하지요. 골로새서 4장 16절에 바울이 “회람장이 있다. 그런데 그 편지가 현재는 라오디게아교회에 있다. 그것이 너희에게 올 때 반드시 읽어라”라고 하는데 그 편지가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6:21),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골 4:7).

바울의 이 말은 로마 감옥에 있는 그가 에베소서를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보낼 때 편지 배달부로 두기고를 세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두기고는 이 편지와 함께 바울의 소식을 전하면서 교회들을 위로했습니다.

에베소서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며 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충만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분의 충만함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전체 내용입니다.



교회의 모습

에베소서는 교회의 모습을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람으로 비유를 들자면 예수님은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몸입니다. 사람의 머리와 몸이 하나로 연결되듯이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그의 몸 된 교회로 그대로 흘러갑니다(1:22,23, 2:4-7).

둘째, 교회는 건물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물의 중심이 되는 모퉁잇돌이며, 교회는 그것을 기초로 건축된 건물입니다. 건물이 서로 연결되면서 한 건물이 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교회가 되어갑니다(2:20-22).

건물이 기초와 기둥과 지붕과 벽으로 이루어지듯 교회는 기초의 역할을 하는 사도와 선지자와 기둥 역할의 교사와 지붕 역할의 목자와 그 집을 사람들로 채우는 전도자로 이루어집니다(2:20, 4:11,12). 이것은 하나의 조직체나 명칭이나 호칭을 말하는 것보다는 성령으로 교회를 세우는 교회 리더십에게 부으시는 성령의 직임입니다.

셋째, 교회는 신부와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에 비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 되시고, 교회는 신부 됩니다(5:22-33). 신랑은 신부를 자기 목숨까지 주면서 사랑하고, 신부는 신랑을 위해 순종하는 모습에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넷째, 교회는 영적전쟁하는 군인입니다(6:10-17).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고 이 세상을 즐기는 삶이 아니라 어둠의 영과 전쟁하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군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와 전쟁을 하는지, 군인으로서의 무장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앉으라, 행하라, 서라

에베소서는 로마서처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체 6장 가운데서 앞의 세 장은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시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합니다. 4장-6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합니다. 앞의 세 장이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나머지 세 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말합니다.

워치만 니Watchman Nee는 에베소서를 설명한 《좌행참》Sit, Walk, Stand이라는 탁월한 책을 썼습니다. ‘좌’坐는 ‘앉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곳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고 어둠의 권세 아래에 살던 우리를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지금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위치이며 우리의 영적인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습니다. 앞으로 다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명하며 결박하는 영적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를 1장에서 3장까지 22회나 언급합니다(1장 12회, 2장 6회, 3장 4회).

‘행’行은 ‘행하라’입니다. 4장 1절-6장 9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다섯 가지 영역으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4:1-16). 그것은 ‘하나 됨, 연합’을 말합니다. 성령이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지켜야 합니다. 하나 됨의 요소가 일곱 가지인데 하나 된 몸, 한 분 성령, 부르심의 한 소망, 한 분 주이신,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 한 분이신 하나님이 그것입니다.

교파가 다르고 강조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기반 위에 있다면 하나 됨을 지키는 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종교 다원주의처럼 모든 종교를 아우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위의 일곱 가지의 기반이 우리가 하나 됨을 지키는 요소입니다.

두 번째, ‘진리 가운데서 행하라’(4:17-32). 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행할 수 있는 열쇠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1-7).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주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요 13:34,35).
네 번째,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5:8-14).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5:9).

다섯 번째, ‘모든 관계 가운데서 지혜로 행하라’(5:15-6:9). 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잘 사용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면서 관계에서 지혜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 사회에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참’(站)은 ‘서라’입니다. 6장 10-2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려면 방해 세력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를 앞장세워 가나안의 족속들과 전쟁하며 그 땅을 취했듯이 우리의 유업을 취해야 합니다. 시편 2편 8절에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켜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싸움은 육체가 아니요 사탄의 각 영역의 세력들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상대는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악령들’입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입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이라고 하지요.

이 영적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이 전신갑주입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무장 후에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구하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6:14-17).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에베소서에는 우리에게 가장 모범이 되는 두 개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가족과 친구, 동역자와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알게 하소서’는 ‘경험하게 하소서’라고 바꿔도 됩니다.



기도문 1(1장 17-19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000가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레미야서 9장 23,24절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공평과 정의와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하십니다.
“000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다음의 것들을 알게 하소서.”
첫째,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소서.”
우리의 부르심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 삶의 추진력과 역동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현재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 주시는 유업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 땅의 삶은 종착점이 아니고 경유지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에서 내게 주시는 유업이 무엇인지 알 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셋째, “믿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소서.”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을 통해 풀어지고 나타납니다.



기도문 2(3장 16-19절)

첫째,“성령으로 000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소서.”
겉사람(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속사람의 건강은 더 중요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심같이 먼저 속사람이 강건하면 범사가 잘되고 육체도 건강해집니다.
둘째,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000의 마음에 계시게 하소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의 임재 가운데 머무는 삶은 중요합니다. 그럴 때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000에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4차원의 사랑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경험하는 것이 참으로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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