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881 | 2014-03-05

옷감 염색과 자주색

3차에 걸친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마도 드로아(Troas)에서 있었던 마게도냐 환상일 것이다. 바울은 동쪽으로 향해 소아시아 쪽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해 방해를 받게 된다(행16:6).

서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콤플렉스가 있는 동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왜 성령님은 그 때 복음이 아시아 쪽으로 쭉 뻗어서, 보다 일찍 한국 땅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성령님의 계획 안에서 복음 진로의 방향은 유럽 대륙이 있는 서쪽으로 급작스럽게 터닝(turning) 하게 된다. 그러한 터닝 포인트에 있던 곳이 바로 ‘드로아’였고, 이곳에서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고 유럽 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행16:9,10).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지금의 발칸반도 동부에 있는 빌립보 성에 도착했다. 빌립보는 환상 가운데 나타난 마게도냐 인의 지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성이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합류한 누가와 함께 안식일에 기도하러 강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으로 있을 유럽에서의 전도사역을 위해 큰 도움이 될 루디아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루디아와의 만남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통해 바울의 여정을 유럽 쪽으로 틀게 하신 성령님께서 친히 중재하신 ‘특별한 만남’이었다.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는 ‘루디아’란 여인에 대해서 그런대로 상세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녀는 소아시아에 있는 두아디라 성 출신으로 직업은 ‘자주 장사’였다.

‘자주 장사’라는 직업을 들을 때 1세기 당시의 청중들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자주 장사’의 의미를 모르고, 또 1세기 당시 자주색 염색업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없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루디아와의 만남 속에 감춰진 특별한 의미가 깊이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는 1세기 당시의 성도들은 ‘자주 장사 루디아’란 말만 듣고도 즉시 성령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을 깨닫고 깊은 탄식을 연발하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아하! 그래서 하나님이 마게도냐 환상을 통해 바울을 빌립보 쪽으로 인도하셨구나!”이번 장에서는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직업을 생각해 보면서 1세기 당시 옷감 염색업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아울러 옷감에 염색된 색깔을 통한 당시의 사회적 신분 구조에 대한 배경적 지식도 얻어보도록 하자.

자주색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행해졌다.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수준에서는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그 중에 유일하게 예외가 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적으로 행해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가 이름인 ‘페니키아’(Phoenicia)는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인데, 국가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자주색 염색업은 페니키아의 대표적인 국가산업이었다.자주색 염료는 ‘뿔 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 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씩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2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일만 마리의 뿔 고둥을 잡아야 할 정도로 귀했다고 한다. 뿔 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주곤 했다.

뿔 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4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 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이 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뿔 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자주색은 최상위 3%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으로 인해 ‘자주색’은 곧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영어에는 ‘유서 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말할 때 ‘blue-blooded family’라고 말하고 우리말에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주는 색깔이었다. 소위 말하는 최상위 3%에 속하는 상류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단위로 1억 원 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비유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부자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우리는 제대로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듣는 1세기 당시의 유대인 청중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였다는 것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부자는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자도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눅16:19-21)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잠31:22)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에도 등장한다.“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아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King of Kings)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 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나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요소가 전혀 없었다. 일생 가난한 모습으로 사신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 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마27:11)

이에 로마 군병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에 왕만이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왕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병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가 유일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포기’와 ‘내려놓음’의 삶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i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단 술에 염색해야 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15:38)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의 색깔은 청색으로 되어 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28:31)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들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5,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겉옷에 있는 옷단 술에 청색의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로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고 모두 중산층으로 구성된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15:4)

자주색 염료와 관련된 성서시대의 문화를 살펴보는 가운데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주 장사인 루디아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풀렸을 것이다.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최상류층 3%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사역의 조력자로 붙여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류모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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