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180 | 2014-03-05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9:2)

제 2편

지난 1편에서는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예수께서 장님을 치유하신 것이 계율을 어긴 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런 행동은 히브리어로 피쿠아크 네페쉬로 알려져 있다. 사실, 탈무드는 사람에게 떨어진 돌 무더기를 치우는 것 같이 생명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안식일 위반을 허용한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이 즉각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아닌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요마83a).

이러한 원칙은 치료 행위에도 적용 된다. 현인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어떤 사람이 목에 통증을 느낀다면, 그는 안식일에도 약을 먹을 수 있다. 그러한 증상은 인간의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위험에 직면했을 때는 안식일 법이 일시 중지된다” (요마83a). 따라서 “사람이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을] 열망할 수록, 더욱 칭찬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요마84b).

성경에는 이러한 사고의 기반이 되는 구절이 있다. 레18:5는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은 모든 법은 그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사는’ 조건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성경의 법들은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해야 한다. 비슷한 계명인 “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레19:16)는 유대인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도와야 할 의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 (눅10:30-35)는 이런 원칙을 잘 나타낸 예이다.

이러한 원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우상 숭배, 근친 상간 또는 살인의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거나 다른 사람을 죽게 두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유대인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돼지를 희생 제사로 드리도록 요구 받는다면,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수전절에 관련된 이야기인 하스모니안 반란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리스의 명령에 복종해 돼지로 희생 제사를 드린 제사장은 그 죄 때문에 대제사장 마타티아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법들의 초점은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는 분명 안식일이어도 치료해야 할 정도의 병이다. 눈이 먼 사람은 구덩이에 빠지거나 돌에 넘어지거나 눈이 보였으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수 많은 죽음의 위협에 노출 된다.

따라서 유대인 법의 시각에서 볼 때 예수께서 고치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다. 기회가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율법의 규정처럼, 지체하지 않으시고 안식일에 사람의 생명을 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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