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574 | 2014-03-05

100가지 이름의 메시아 -

히브리어 알파벳의 10번째 문자인 요드 -

많은 사람들은 이 이름이 특별한 신학적 연결을 위한 증거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랍비 세아디아 가온과 영 등 많은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의 의’라고 선언하셨다.”

두 개의 다른 구절들은 우리가 이 이름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첫 번째 구절은 예레미아가 말한 것이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 (아도나이 찌드케누)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렘33:16). 두 번째 구절은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라고 하리라” (겔48:35).

이 두 구절들은 아도나이 찌드케누 안에서 메시아에 대한 언급을 보려면, 또한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처럼 명백한 난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 양측 모두의 신뢰할 말한 해석가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하지 못했다. 이븐 에즈라와 다른 사람들처럼 C. F. 케일도 강조점을 본질/실체(substance)에서 역할(function)로 올바르게 전환하였다: “우리는 그 이름을 지닌 이가 여호와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축복의 절정인 의가 백성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이다.”

11세기의 유명한 랍비 라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날에 우리를 옳다고 하실 것이며, 이는 메시아가 구원을 주실 대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라쉬의 말처럼, 완전한 의를 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하다 (렘23:5).

따라서 예레미아가 높인 이름 메시아는 비범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분은 단순히 다윗 혈통 출신의 뛰어난 인간이 아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강력하게 나타내신 분이셔서, 예루살렘이 아도나이 찌드케누라고 불리게 될 정도로 예루살렘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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