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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을 갈망하는 시대

2천년을 시작할 때 인류는 새 밀레미엄에 대한 큰 희망을 표시했다. 그런 인류가 21세기를 본격 시작하는 첫해에 직면하게 된 것은 테러와 보복 전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런 현실에서 인류는 다시 한번 평화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받게 된 것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 위에는 평화였다. 테러와 전쟁으로 평화를 진정 갈망하게 하는 올 해 우리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절박하게 붙들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서 있게 되었다. 평화를 갈망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평화의 왕되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게 하는 것이 올 크리스마스에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마리아에게서 배우는 사색하는 영성

누가복음 1장에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바라는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하는 자를 맞이하는 대조적인 태도를 보인 두 사람이 소개된다. 하나는 사가랴이다. 그는 불임 부부를 고통받아오다가 너무 늙어 포기한 성직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하는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다. 그를 맞는 사가랴의 태도는 아이를 갖겠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는 것이다. 증거를 요구하는 그의 태도는 불신앙의 전형이라 하겠다.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는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취하였다. 마리아도 사가랴처럼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다. 가브리엘의 인사를 받은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인사가 어찜인고 생각했다. 예사롭지 않은 인사에 직면한 마리아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의 결과로 인해 그 다음 가브리엘이 전해주는 말씀 하나 하나를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특히 처녀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말에 마리아는 놀랐고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력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마리아가 진정 놀란 것은 그토록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 그리스도가 자기를 통해 온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영광이었다. 또한 걱정스러운 것도 미혼모가 되는 것에 있었다기보다는 처녀로서 어찌 그리스도를 잉태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한 마리아는 겸손히 가브리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자세를 보였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이는 사가랴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마리아는 어디에서 그런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사색하는 영성으로 얻어진 결과였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무조건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사색하는 영성을 키우지 않고서는 결코 그리스도를 제대로 맞이할 수 없다. 예수님이 탄생한 당시에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아보고 축하한 사람들은 적었다. 목자들과 시므온 그리고 동방박사들 등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할 수 있었다. 이들도 사색하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상한 징조를 그냥 넘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아채고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경배했다. 이 같은 귀한 경배는 사색하는 영성 없이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가 갈망되는 이 시대에 평화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일부터 해야 하겠다. 그것은 사색하는 영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 점이 2001년 크리스마스 문화를 생각할 때 가장 밑바탕에 깔아야 하는 기초가 아닐까 한다. 이를 기초로 해서 올 크리스마스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풍토를 만들었으면 한다.


명화 감상으로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아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장사치들이 한몫 잡으려고 요란을 떨 것입니다. 교회도 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이지만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들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부산함과 떠들썩함보다는 마리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사색하는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명화 감상은 아주 좋은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가 될 수 있다.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놀람, 사색, 반문, 겸손, 순종 등으로 말한다. 그런데 안젤리코의 그림을 보면 마리아의 사색하는 반응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마리아 숭배로 마리아는 화려하고 권위있는 왕비로 그려지던 당시의 풍토와는 달리 안젤리코는 수수한 마리아를 그렸다. 이는 기존의 문화적 분위기를 바꾸는 창조적 작업이었다. 우리는 작가의 그런 정신과 이 그림을 통해 사색하는 마리아의 자세를 묵상함으로 이 시대에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의 방향성을 올바로 잡을 수 있어야겠다.


사색은 갈망의 현실에서 올바로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자세를 갖추게 만들 것이다. 절망과 분노의 상황에서 간절히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망하는 것은 떠들썩한 외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격한 열정 속에서도 조용한 사색으로 본질을 꿰뚫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색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색은 직면한 순간에 대해 충실히 본질을 바라보려는 자세이다. 진정한 갈망은 깊은 사색으로 완성된다. 이렇다고 할 때 우리가 사색하는 영성으로 하는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 위해서 명화를 감상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임을 의심할 수 없다.


사색하는 문화를 찾아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마약과 섹스로 문란해진 이 세상에서 조용한 사색을 하며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TV에서 쏟아내는 각종 사건과 행사는 우리의 심령을 떠들썩하게 흔들어놓고 있다. 이런 속에서도 우리는
과연 사색하는 영성을 키우며 내 삶으로 들어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길은 격한 열정을 정적인 편안함으로 풀어낸 예들을 찾아 본받는 것이다. 명화 감상으로 올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를 말하는 김에 반 고흐의 글귀와 그림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반 고흐는광기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목사가 되려 했을 때도 지나치리만큼 드러내는 열정 때문에 신학교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는 그런 광기어린 열정으로 그림을 쏟아내었다. 그런 격정의 사람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것은 의외였다. “그림에서 나는 평안함을 주는 어떤 것을 말하기를 원한다. 음악이 편안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선남 선녀를 그리되 후광이 상징하곤 하는 영원성의 그 어떤 것을 그리기 원한다.” 이런 그의 말에 걸맞는 그림이 있는데, “무릎 위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에 관한 스케치이다. 이 그림을 보며 광기있는 반 고흐가 이런 정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신기했고, 그런 광기가 이런 편안함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신선했다. 격정이 불타는 반 고흐가 그런 차분한 말과 그림을 내놓을 수 있었던 원천은 어디에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결국 그의 사색 때문이었을 것임을 알게 된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찾기만 한다면 사색함으로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를 아름답게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교회 안에서 명화 감상을 통해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한다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이 시대가 비록 사색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교회 안에서 하는 명화 감상을 통해 새로운 크리스마스 문화 누리기가 실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할 수밖에 없는 이 갈망의 현실 속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는 영광을 얻는 은혜 받은 자가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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