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양 라이브

LIVE 찬송가와 함께 - 도노마리아

어린시절 다녔던 혜성교회는 성탄절이 되면
교회 강대상 앞 오른쪽과 왼쪽에 2개의 큰 배너를 걸었습니다.
왼쪽에는 '하늘에는 영광이요'
오른쪽에는 '땅에서는 평화로다'라 쓰여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배너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하늘로 표현하여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절대로 잃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 영광이 우리 가운데 머무신 이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신 하나님의 영광의 길은
세상이 생각하는 영광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을 택하시고 그 죽음으로 온전한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땅의 평화를 갈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고향인 이북을 등지고 피난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덕에
전쟁이 없는 평화가 오기를 구하는 기도를 어릴 적부터 드렸습니다.
'북한놈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구하는 기도가 부모님의 기도였습니다.
나를 위한 기도 말고 처음 배운 기도였고, 그 기도는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란
당장 나에게 연관된 사안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기도임을 배웠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무엇일까요?
아무 일 없이 하루를 편안하게 지내면 그것이 평화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싸웁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억압받은 자를 위해 싸우는 것 이라면 옳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가면을 쓴 사람도 많아서
진짜를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짜 평화를 위한 선한 싸움이 어떤 것인지 보이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러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죽이려고 모의해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지만
보복이 아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꺽임으로 꺾음을 이기신 샬롬의 통치를 이루신 것입니다.

성탄의 찬양은 부를수록 고난을 함께 묵상하게 됩니다.
고난 받기 위해, 아니 처참하게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게 평화를 주시려 십자가를 달게 받으셨으니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이 찬양의 가사처럼 "웬 은혜입니까?"하며 가슴으로 부르게 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의 끝자락,
반목하고 분열된 이 땅 위에
평화의 왕 예수님이 임하시길
기도하며 찬양합니다.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123장 저들 밖에 한밤 중에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134장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141장 호산나 호산나
143장 웬말인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148장 영화로운 주 예수의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